‘코로나 쇼크’로 빈사상태에 빠진 기업들의 정부 지원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서부터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제약바이오 기업에 이르기까지 업종과 규모가 따로 없다. 이들은 정부에 정책자금 지원, 세금부담 완화, 예산 조기집행 등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

휴일인 어제도 제약바이오협회가 의약품 규제정책을 중단하고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느끼는 심각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기업들은 생산량이 최근 두 달 새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공개, 전환사채 발행이 줄줄이 좌절돼 상당수 바이오 기업이 최악의 ‘돈가뭄’을 호소하는 현실이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행정 지원도 아끼지 말고, 돈도 아끼지 말라”고 했지만 잘나가는 기업들마저 연구개발(R&D) 중인 기술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정부가 중심이 돼 조성한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어려운 게 실상이다.

우리 경제를 이끄는 자동차·석유화학·조선·항공 등의 대기업들도 사정이 호전될 기미가 안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어제 발표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요 업종별 애로 및 건의사항’을 통해 이들이 유동성과 고용 유지 등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금까지 “중견·대기업들 사정은 나쁘지 않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도리어 “정부가 지금보다 더 강력히 개입하는 것을 시장이 경제위기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혀 기업들을 허탈케 하고 있다.

정부·기업 간 위기의식의 간극이 커, 재계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표몰이’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에만 몰두하고 기업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마스크 대란, 코로나 지원금 논란에 몰두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 근본적인 일자리 대책이라고 할 ‘기업 살리기’는 계속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나마 눈에 띄는 두산중공업 지원책은 구체적인 ‘회생의 밑그림’ 없이 특정 기업에 덜컥 1조원을 수혈키로 한 바람에 “총선 전에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한 특혜성 지원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 정부의 기업 지원 의지와 방식은 중앙은행이 신용등급 BB- 이하 ‘투기’ 등급 채권까지 사주겠다고 나선 미국과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추락하는 기업들을 어떻게든 되살려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의 마중물로 삼으려는 게 미국의 의도로 분석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똑같이 할 수는 없더라도 대처가 늦어 멀쩡한 기업을 망가뜨리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이라도 기업들의 현실을 돌아보고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