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꽃동네 가는 길
벌써 21년 전 일이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표지석이 맞아주는 충북 음성 꽃동네에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갔다.

지정받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하자 죽음의 무게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환자 머리맡에서 기도문을 읽던 수녀님의 목소리는 마치 천사의 음성 같았고, 임종을 앞둔 환자의 얼굴은 평온했다. ‘의례적 봉사활동이겠거니’라고 생각한 게 부끄러워 하룻밤 묵으며 기저귀를 빨고 바닥 청소를 했다. 내 마음을 닦아내는 심정이었다.

꽃동네를 나서며 생각했다. 가장 행복한 날, 가장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그로부터 20년, 매년 성탄 전야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까운 가평 꽃동네를 찾았다.

12월 24일, 이곳에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축제가 열린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축제지만,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정성껏 연습한 노래와 율동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즐거워한다. 아마 예수님이 성탄전야에 딱 한 곳만 방문한다면 그곳은 가평 꽃동네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의 축제는 무대에 올라가는 팀, 올라갈 팀, 그리고 내려오는 팀 등이 서로 분주하게 오간다. 즐기기 위한 축제인지 사진을 찍기 위한 행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꽃동네의 성탄잔치는 다르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고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화려하지도 멋스럽지도 않지만 그 투박한 정겨움은 말 그대로 모두의 기쁨이 된다.

이들은 어쩌면 이리도 행복해할까? 늘 생각해 왔다. 그것은 기쁨과 희망을 넘어 슬픔과 외로움까지 함께 나누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도움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들, 서로의 가난을 알기에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꽃동네다.

꽃동네 성탄잔치 20년 차 단골인 내가 올해는 피치 못할 출장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그리움은 더 커졌다. 새해, 꽃동네에 가야겠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의 공동체를 지키고 우리 사회가 증오, 분노와 경쟁을 넘어 꽃동네와 같은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정치의 역할을 다 하고 싶다.

“우리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 일은 하느님의 명령이자 우리의 소명입니다.” 가평 꽃동네 설립 당시 오웅진 신부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 빗대 정치인들과 나누고 싶다. “우리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명령이자 우리의 소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