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때를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게다. 초목지시(草木知時)라는 말이 있듯이 공직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세대교체든 용퇴든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후배나 동료를 위해 자리를 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요즘 사정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귀거래사(歸去來辭)도 가슴에 와 닿기 보다는 많은 회한이 배어 있다. 검찰의 서열파괴 인사로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이들의 이임사가 화제다. 강제로 밀려 나가는 서운한 심정이 절절이 배어 있다. "인사총탄에 맞아 죽어 나간다"느니 "정권교체기마다 정권집권자가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새로운 정치검사를 배태시키고 있다"느니 "검사의 신분보장에 관한 법규정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느니 하며 노골적인 인사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검사간부들의 이임사는 전에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법조비리나 정치적인 사건으로 물러나는 검사들일 수록 억울한 감정이 많아서인지 비장감마저 서려있는 듯하다. "조직을 위해 벚꽃처럼 지겠다" "선비는 목을 쳐도 욕을 보이지 않는 법이다" "권력에 대한 향수가 눈물보다 진해서야 되겠는가" "위대한 검사는 정의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다"는 말들을 남겼다. 어느 사회나 시대가 변하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마련이지만,그렇다고 "옛 것은 다 나쁘다"는 사고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논리와 정황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번쯤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거를 오늘날의 잣대로 재단한다는 것은 모순이며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카렌 휴즈가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발표했을 때 워싱턴 정가는 아쉬운 한숨으로 가득했다. 그는 부시의 '안전판'이라 불릴 정도로 헌신적으로 일했고 가장 능력있는 공직자로 평가받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귀거래사는 "15살 난 아들이 고향 텍사스와 그곳의 친구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아쉬워하는 시기에 떠날 때 큰 박수를 받는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