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생태계 복원, 가장 시급한 과제다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지난해 31조1000억원에서 올해 25조9000억원으로 삭감하면서 적지 않은 연구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최초로 자성반데르발스 연구를 개척하는 필자의 연구비도 2020년 '0원'이 된 적이 있었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해 낸 세계적인 선도 연구 그룹이었고, ‘네이처’를 비롯해 유수의 학회지에 우수한 논문을 쓰고 있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연구비 전액 삭감의 이유를 들을 수 없었던 게 가장 답답했다.

연구비 삭감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내 연구개발비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연구비 삭감으로 작은 연구비로 연구를 이어가던 많은 소규모 연구실, 특히 지방에 있는 연구자의 연구가 큰 타격을 받았다는 데 있다.

흔히 한국 과학계 연구비의 문제점으로 고비용·저효율이 꼽힌다. ‘네이처’가 2020년 분석한 자료만 봐도 한국 연구개발의 효용성은 과학 선진국 대비 4분의 1에 불과하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렇게 낮은 연구 효용성의 대부분은 1억원 미만의 작은 연구비를 사용하는 연구자에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한국 연구진이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3대 연구지에 발표한 논문 총수는 122편이다. 이 중 서울대가 36편, KAIST가 26편을 차지한다. 나머지 대학이 60편을 발표했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일본 도쿄대는 297편, 중국 베이징대는 227편을 발표했다. 2020년부터 2023년간 전국에 있는 물리학과에서 나온 총 4037편의 논문 중 상위 두 대학에서 나온 논문은 고작 14%(593편)에 불과하다. 한국 과학의 진정한 영웅은 열악한 연구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이어가는 전국 각지의 작은 연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연구개발비와 관련한 진짜 문제는 ‘분배’에 있다. 연구비가 필요한 곳에 적절한 연구비(적정연구비)가 가야 하는데, 현재는 그냥 세칭 ‘좋은 대학’에 연구비를 몰아준다. 지방이나 여건이 열악한 곳에 있는 연구자는 연구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국내 연구비 배분에서 연구 생태계가 갖는 중요성도 도외시되고 있다. 제대로 된 과학 생태계는 글로벌 톱5에 들어가는 ‘라이언 킹’,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는 ‘터프 타이거’, 그리고 생태계를 유지하고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외로운 늑대’가 공존해야 한다. 중앙에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외로운 늑대’만 피해를 보는 현재의 연구비 분배 체계는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

정부는 내년에 대규모로 연구개발비를 조정한다고 한다. 올해 추경을 하더라도 주로 지방대와 수도권 중소규모 연구자가 받는 ‘기본 연구비’를 복원하길 촉구한다. 서둘러 한국 과학의 숨은 영웅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과학 생태계 붕괴를 막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