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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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은 40대 주부 김모씨는 최근 고민이 생겼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암 발병 이전보다 커졌는데, 보험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은 더 까다로워졌을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이달 초 한 대학생이 7년 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던 사실 때문에 우체국 교통재해보험으로부터 가입 거절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걱정은 더 쌓였습니다. 주변에서도 과거 암 발병을 이유로 보험사가 매기는 월 보험료 수준이 매우 높을 것이고, 김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가입하지 못하게 할 것이란 의견이 쏟아졌죠.

그러던 중, 적정 보험료와 조건 등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테니 보험 가입을 시도해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국내 대형 보험사에 연락한 김씨. 김씨는 보험 청약서를 보는 중 "최근 5년 이내 10대 질병으로 의사로부터 의료 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라는 질문 항목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유방암이 10대 질병에 해당하는 것은 맞으나, 이미 10년 전 완치됐을 뿐만 아니라 최근 5년간 관련 사안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사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생각이 많아진 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청약서를 들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 백혈병, 협심증, 심근경색 등 10대 질병을 앓았던 분이라면 보험 청약서 질문 항목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추후 불이익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걱정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보험을 해지하는 사례가 아주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를 방증하듯 관련 민원은 해가 갈수록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손해·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17년 8888건에 불과했던 손해보험 관련 고지의무 위반 관련 민원은 2019년 1만4750건으로 급등했죠. 같은 기간 생명보험 관련 민원은 5719건에서 6681건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의 씨앗이 되는 '고지의무'는 정확히 무엇일까요. 고지의무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현재 병증, 과거 병력, 직업 등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의무입니다. 고지의무에 담긴 정보는 보험사가 개개인의 보험 사고 발생 가능성을 측정하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상법 제651조에는 '고지의무', 보험 약관에는 '계약 전 알릴 의무'라고 명시돼 있죠. 만약 보험계약자가 고의로 관련 내용을 밝히지 않을 경우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사고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보험계약자의 중대한 과실로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따라서 보험에 가입하고자 할 때, 보험사에 알려야 할 고지의무 사항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상법 제651조의2에서는 '보험회사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한다'라고만 규정돼 있습니다. 여기서 '추정'의 의미는 "어떤 사항과 동일한지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 반대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서로 동일한 것으로 인정해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상법에서는 청약서상 질문사항에 기재된 사항들이 기본 고지의무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고지의무 대상을 서면에 질문한 사항으로만 제한하지는 않는 셈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청약서상 질문사항에 없다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중요한 사항으로 판단된다면 고지의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단, 현재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 보험 상품의 표준약관에는 '계약 전 알릴 의무'의 대상을 '청약서에서 질문한 사항', '청약서의 기재사항' 등으로 한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법의 규정과 약관 조항이 다를 경우 상법 제 663조에 따라 약관 조항이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청약서에 기재되거나 질문 항목에 있는 사항에 대해서만 고지의무가 부여되는 것이죠.

따라서 10년 전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은 김씨가 1년 이내에 추가 검사(재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관련 사실을 보험사에 고지하지 않아도 불이익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10년 전 암을 치료한 뒤 5년 전에 이미 완치 판정을 받았고, 1년 이내에 추가 검사를 받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약서상 '계약 전 알릴 의무'에는 최근 5년 이내의 진단·검사·치료·입원·수술 여부와 최근 1년 이내의 추가 검사 여부 등을 묻고 있기 때문이죠. 단, 보험사별로 서면으로 적시하도록 요구하는 사항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계약 전 알릴 의무' 항목에서는 보다 꼼꼼히 질문을 확인하고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약 전 알릴 의무' 항목에 충실히 답했다면, 보험사와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에 휘말릴 것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올해 초 법무부가 보험계약자 고지 의무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하도록 하는 소비자정책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보험계약자의 '자발적 고지의무'를 '응답적 고지의무'로 바꾸는 방식인데, 관련 상법 개정이 완료된다면 보험계약자가 보험사의 서면 질문에 모두 답변했을 경우 별도의 '자진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고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명확히 간주하게 됩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위 사례는 고지의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무부가 보험계약자 고지 의무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까지 추진 중인 만큼, 소비자들이 청약서상 적시된 '계약 전 알릴 의무'에 충실한 답변을 한다면 분쟁에 휘말려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 내용은 특정 사례에 따른 것으로, 실제 민원에 대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