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호황으로 전남 광주의 앰코 공장에 주문이 밀려들면서 클린룸을 가득 메운 장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난달부터 가동을 시작한 송도 신공장 전경. 앰코코리아 제공
반도체 슈퍼호황으로 전남 광주의 앰코 공장에 주문이 밀려들면서 클린룸을 가득 메운 장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난달부터 가동을 시작한 송도 신공장 전경. 앰코코리아 제공
‘crazy business(정신 나간 사업).’ 고(故) 김향수 아남 명예회장이 1968년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들은 말이다. 가족은 물론 전문가들마저 모두 미쳤다고 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개념조차 생소한 반도체라니 그럴 만했다. 당시 아폴로 우주 계획과 미사일 개발 등에 몰두하던 미국 정도만 반도체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아남반도체는 한국 반도체 역사의 시작이다. 국내 1호 반도체업체는 반세기 동안 ‘아남산업→아남반도체→앰코테크놀로지’로 사명을 바꾸며 부침을 겪었다. 반도체시장이 살아나면서 시련도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앰코는 지난해 매출 4조3000억원, 영업이익 6800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패키징 회사로는 세계 2위 규모다. 인천 송도에 1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아남의 흔적은 지워졌지만

'한국 반도체 1호' 아남의 부활…앰코, 송도서 반도체 패키징 신화 쓴다
아남반도체는 국내 반도체 수출 1호 기업이다. 아남그룹의 탄생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김 명예회장은 반도체 패키징 사업으로 번 돈을 가전사업에 투자했다. 1973년 일본 마쓰시타와 합작해 한국나쇼날전기주식회사(1990년 아남전자로 변경)를 세우고, 국내 최초로 컬러TV를 만들었다. 이후 아남건설, 아남시계 등을 창업해 아남그룹으로 회사를 키웠다.

승승장구하던 아남그룹은 1996년 비메모리 분야에 뛰어들며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직후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비메모리사업은 동부그룹에 넘어갔다.

그룹의 모태인 반도체 패키징 사업은 김 명예회장의 아들 김주진 현 앰코 회장이 이끌던 미국 판매 영업조직 앰코테크놀로지가 인수했다. 2000년대 들어 반도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앰코에 기회가 찾아왔다. 종합반도체회사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를 외주로 돌리기 시작했다. 30년간 반도체 패키징을 전문으로 해온 앰코는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반도체 칩 기술 발전과 함께 패키징 기술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중요한 회사로 거듭났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5개국에 12개 생산기지를 갖춰 놓은 것도 성장세에 탄력이 붙은 요인이다. 2014년 3조5100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조3000억원으로 뛰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영업이익도 2014년 5600억원에서 지난해 6800억원으로 늘었다.

◆‘50년 꿈’ 송도에 대규모 투자

송도 신공장은 지난달 가동을 시작했다. 부지는 약 18만5000㎡. 근처에 자리잡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공장과 비슷한 규모다. 양성환 앰코코리아 제조1팀장(상무)은 “퀄컴, 브로드컴 등 세계 수백개 반도체회사 고객으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며 “송도공장을 포함해 앰코가 하루에 생산하는 패키징 반도체는 600만개를 웃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5000명까지 인원을 늘릴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송도에 터를 잡은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고용 창출을 이뤄내는 셈이다.

◆삼성 TSMC와 고부가 경쟁

송도공장은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고부가 반도체 패키징을 책임질 첨단 라인이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가 소형화하면서 반도체 패키징은 최근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와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 TSMC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반도체 패키징이란 생산된 칩에 전기가 통하도록 와이어를 연결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몸체를 덧씌우는 공정이다. 과거에는 작은 면적의 웨이퍼에 얼마나 많은 회로를 새겨 넣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10나노미터(1nm=10억분의 1m)까지 회로 간격이 좁혀지면서 공정 미세화를 통해 저장 용량을 확대하는 것은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김민종 앰코코리아 K5(송도공장) 파트장은 “반도체 분야에서 패키징을 통한 ‘크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송도 신공장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도=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