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20대 국회가 기업이라면…
A그룹이 파격적인 임원인사를 했다. 전자, 자동차, 에너지, 금융, 리조트 등 핵심 계열사 사장 임기를 1년으로 줄였다. ‘연임(連任) 불가’ 조건도 달았다. 1년 뒤 보직을 넘겨받을 ‘차기 사장’까지 예고발령 냈다. 인사 원칙은 단 하나, 근속 연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모든 임원들에게 사장 자리에 앉을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계열사 임원들 간 인사이동도 최대폭으로 했다. 전문성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고참 임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인맥을 쌓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각사 차기 사장 발령을 받은 임원조차 취임 직전까지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게 했다. 고참들의 경력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신임 임원들은 ‘빈자리가 난 곳’에 꾸겨 넣었다. 전문성 따위는 살펴보지도 않았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사방식이다. A그룹은 다르다. 실적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다. 생존 걱정을 할 일이 없다. 임직원 급여와 활동비를 포함한 그룹 운영경비가 꼬박꼬박 외부에서 들어온다.

날벼락을 맞는 곳은 따로 있다. 협력업체들이다. ‘슈퍼 갑(甲)’ 회사의 사장들이 1년 단위로 바뀌니 말이다. 1년마다 새로 들어앉는 사장들이 사업성격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결정을 내리지나 않을지, 하루하루를 가시방석 위에서 보내야 한다. 업무 파악을 돕기 위해 ‘과외공부’를 시켜줘야 할 ‘갑님’이 사장만도 아니다. 임원진도 경력과 무관하게 앉은 사람들투성이다. 이들을 번갈아 만나 기초과정부터 사업 브리핑을 하고, 친분도 쌓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협력회사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예화(例話)가 길어졌다. ‘A그룹’은 국회다. 20대 국회가 사흘 전 개원(開院)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상임위원장 나눠먹기’였다. 임기가 2년인 18개 상임위원장 보직 가운데 법제사법·정무·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국방·정보·예산결산·윤리위원회 위원장직을 1년으로 쪼갰다. 앞의 다섯 개 자리는 여당인 새누리당, 뒤의 두 자리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부 규약’을 마련했다. 자당(自黨) 몫으로 할당된 상임위원장 자리를 소속 중진의원들이 ‘싸우지 않고’ 나눠 갖도록 내놓은 나름의 ‘고육책’이란다.

“고육책의 쓴물을 누가 뒤집어쓸지는 알 바 아니다. 의원들이 감투를 쓰고 경력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게 여야 지도부의 속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을 대표해 행정 각 부처를 감독하고 법을 만드는 국회 상임위원회 수장(首將) 자리를 해당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줄줄이 맡길 리가 없다. 기획재정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는 해당 상임위원회 경험이 전혀 없는 의원에게 위원장직을 맡겼고, 의사 출신으로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한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으로 선임됐다.

1~2년 뒤 특정 상임위원장을 맡기로 한 의원들을 ‘더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다른 상임위원회에 배정하기까지 했다. 내년 6월부터 미래창조과학위원장을 맡기로 한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2년 뒤 정무위원장을 맡기로 한 의원은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경력관리’를 하도록 했다.

상임위원 배정도 ‘고참 경력관리 우선원칙’을 작동시켰다. 비례대표로 영입된 경제학 교수 출신이 외교통일위원회에 배치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령받았다.

이렇게 구성된 상임위원회와 국회가 국정(國政)을 얼마나 제대로 살피고 입법을 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A그룹이 민간기업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한 채 망할 게 분명하다. 공기업이라면 국회에서 경영을 망친 파행인사를 추궁하겠다고 서슬 퍼렇게 달려들 게 뻔하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이런 국회를 언제까지 두고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