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정부의 대기업정책에 중대한 변화를 알리는 발표가 있었다.

요지는 여신관리대상을 10대그룹으로 줄이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가급적
완화하며 대신 공시제도와 감사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소액주주의 지위를
강화하는 등 내부적인 견제기능을 제고함으로써 경제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30대이든 10대이든 여신관리를 지속한다는 것은 금융자율화를 거듭
강조해온 정책기조에 어긋나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를 자율적인 경제기능에
맡긴다는 것은 반가운 정책변환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그 실천의 방법론에 몇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어 약간의 조언을
하고자 한다.

소액주주의 지위강화나 공시및 감사제도의 정비는 비단 대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주식회사는 원래 자본다수결을 본질로 하므로 회사의 권력이 일부의
대주주에 집중되고 그에 따라 기업이윤의 다양한 분배기회도 대주주가
독점하게 마련이다.

특히 주식이 널리 분산된 상장회사에서는 소액주주의 경영소외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대주주의 독주를 견제하고 경영의 공지성을 확보
하느냐가 오늘날 회사법의 최대의 과제로 등장하였다.

그러므로 신대기업정책은 대기업에 국한된 제도로서 마련할 것이 아니라
일반 회사법의 제도로서 구상하여야 한다.

회사법 일반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금년 10월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정상법(회사법)의 형평성과 관련해서 발견된다.

개정상법은 신대기이업정책과는 달리 경영자의 편의에 경사되어 있다.

경영자의 편의를 배려하는 것 자체야 기업활동의 활력화를 위해 바람직
하지만, 문제는 소액주주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한 예로, 회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는 주주들의 단체의사를 여하히
형성하느냐인데 현행상법은 주주총회의 보통결의를 위해 발행주식의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찬성을 요구하는데 반해 기정상법은 출석정족수(과반수출석)를
폐지하고 발행주식수의 4분의1 이상만 되면 출석주식의 과반수만으로 결의가
가능하였다.

일반적으로 단체의사형성을 위해 과반수출석을 요구함은 결의참가자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리적인 방법이므로 개정상법의 결의방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 아닐수 없는데,이 법이 국회에서 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하고
과반수가 찬성한 가운데 버젓이 통과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상장기업의 소유구조로 보아 대주주 1인만 출석하면 보통
결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상태에서 특별법의 형태로 대기업에 국한하여 소액주주의 지위를
강화하는 법을 만든다면 우리나라 회사제도는 우대받는 대기업의 소액주주와
천대받는 중소기업의 소액주주가 공존하는 아주 기형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대기업정책은 바로 회사법속에 들어가 현재의 문제점을 전체적
으로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다음의 조언은 입법자세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대기업정책의 일환으로 추가된 발표를 보면 사외이사제를 채택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증자의 요건을 완화한다고 한다.

사외이사의 본바닥인 미국에서조차 그 무용함이 검증된 바이고 보면 정부가
사외이사에 이같이 집착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는 논의로 하고
증자요건을 완화하여 사외이사를 유도한다는 것은 균형을 잃은 착상이다.

경제 5월5일자에 보도된 "국가경쟁력기획단"의 법령정비계획에서 정비해야
할 법령으로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현재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증자제도는 증권거래법상 본디 신고사항에 불과하다.

증자란 기업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므로 이것부터가 곧 시정해야 할 무근거한 규제이다.

증자의 규제를 불가피한 현실로 알고 체념하더라도 본디 기업의 자유에
속하는 것을 제약하면서 이들 다시 당근으로 삼는 것은 정책의 윤리성을
손상하는 소치이다.

보다 간곡한 진언은 어떤 입법이건 내용도 중요하지만 입법과정에서의
사회적 합의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방통행식의 입법과 행정에 익숙해져 이 문제에 무감각하지만
아무리 내용이 정당하더라도 몇몇 엘리트의 손에서 완결되는 입법은
독선이고 대중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그 법의 모든 이해관계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입법의 당위론과 반대론이
충분히 논증되는 절차를 거칠때 비로소 살아있는 법규범의 구실을 할수있다.

그러므로 신대기업정책은 그 정책을 구상한 사람의 설명도 듣고 직접의
당사자인 대기업의 얘기도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회사법의 본령에 속하는 사안인 만큼 회사법학자들의
법리적 검토를 소홀히 해서도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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