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로봇 지휘자' 등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이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무표정한 얼굴의 지휘자를 바라보며 합을 맞췄다. 연주자들은 지휘봉의 움직임에 맞춰 악기를 움직였지만 상당히 어색한 모습이었다. 지휘자의 이름은 ‘에버6’. 그는 인간이 아니다. 국내 최초로 지휘에 나서는 로봇이다. 에버6는 오는 30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실제 공연 ‘부재(不在)’을 이끌 예정이다.

공연을 나흘 앞두고 2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리는 “‘박자만 정확히 셀 수 있다면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가능할까?’라는 상상이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란 호기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연주자에겐 마치 물과 공기처럼 당연했던 인간 지휘자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그 중요성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봇이 지휘자로 나서는 무대는 과거 일본과 스위스 등에서 시도됐으나 국내에선 처음이다. 공연의 지휘자 에버6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인간 지휘자의 몸에 센서를 달아 움직임을 디지털화한 뒤 로봇에 입력해 따라하게 하는 식으로 지휘 동작을 구현했다.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지휘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보완을 거쳤다”며 “지휘봉을 움직이는 동작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팔 하나에 관절 일곱 개를 달았다”고 설명했다.

에버6가 지휘하는 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 비얌바수렌 샤라브 작곡의 ‘깨어난 초원’과 만다흐빌레그 비르바 작곡의 ‘말발굽 소리’ 등이다. 두 곡 모두 몽골 대초원을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곡으로 빠른 속도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의 강점에 초점을 맞춰 골랐다.

인간 지휘자와 협업하는 곡도 선보인다. 최수열 지휘자와 나란히 지휘대에 서서 ‘감’(손일훈 작곡)을 지휘할 예정이다. 최 지휘자는 “‘감’이란 곡은 악보 없이 지휘자와 연주자의 즉흥성에 크게 의존하는 곡”이라며 “에버6가 특정 악기가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나 쉬어야 하는 시간 등을 정확히 체크해주기 때문에 저는 그 안에서 즉흥적인 요소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지휘자의 역할은 무대에서 지휘봉을 흔드는 것보다 무대에 서기 전 악단과 함께 연습하고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로봇 지휘자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로봇이 앞으로 감성적인 영역에서도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며 “예술적인 영역에선 지휘자를 대신해 악단과 연습을 하는 등 방법으로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