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범준 기자
사진=김범준 기자
“피 묻은 빵을 먹지 맙시다.”

1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SPC 제품을 불매하자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경기 평택 소재 SPC 계열 빵 재료 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뒤에도 다음날 기계 가동이 계속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같은 글이 여럿 올라오면서 SPC 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관련 글들에는 “사고 내용을 접하니 너무 화가 난다”며 “앞으로 SPC 계열 매장은 끊기로 했다”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SPC가 운영하는 브랜드 리스트가 공유되고 있다. 2만건 넘게 리트윗된 이미지에는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샤니, 삼립식품 등 베이커리·디저트 브랜드부터 쉐이크쉑, 파스쿠찌 등 외식과 커피 브랜드 로고가 나열돼 있다.

현장에선 없어서 못 판다던 ‘포켓몬빵’까지 판매가 시들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라 SPC 가맹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SPC 상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채널은 SPC 로고 등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진열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반(反) SPC’ 정서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하지만 관련 상품을 파는 자영업자들은 이미 매장 방문객이 줄고 배달 건수가 감소하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지난 15일 소스 교반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근로자 A씨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평택시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지난 15일 소스 교반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근로자 A씨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불매운동으로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지갑을 닫은 제품은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등 기존에 SPC 대표 가맹점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매장에서 파는 상품들이다.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는 가맹점주 A씨는 “근처에 학교와 학원이 몰려있는 지역이라 학생들 하교 시간이 되면 빵이 거의 동날 정도로 나가는데 오늘은 이례적으로 물량이 쌓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배스킨라빈스를 운영하는 가맹점주 B씨도 “배달 주문이 급격하게 줄었다. 매장이 이렇게 잠잠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SPC가 운영하는 파리바게뜨 단일 매장만도 전국 3420여개(2019년 기준)에 달한다. 각종 SPC 계열 업종을 모두 합하면 6000여 곳의 가맹점들이 불매 운동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의 한 제과점을 찾은 고객은 “요즘은 프랜차이즈는 물론 개인 제과점까지 다양한 빵집이 있어 굳이 SPC 제품을 살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경기 평택시 SPC계열 SPL 평택공장의 모습. /뉴스1
경기 평택시 SPC계열 SPL 평택공장의 모습. /뉴스1
자영업자들의 체감 온도는 심각하다. 서울에서 편의점 세 곳을 운영하는 C씨는 “원래 포켓몬 빵이 입고되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분위기였는데 SPC삼립이 제조했다며 재고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불매운동이 거세구나 체감했다”고 털어놨다. C씨 편의점 근처에는 정보기술(IT) 기업이 있어 젊은층 소비자가 많다. 이날 방문고객 중 절반이 넘게 샌드위치나 빵, 쿠키 제품 등의 제조사를 확인하고 ‘샤니’나 ‘삼립식품’ 등이 기재돼 있으면 내려놓았다고 C씨는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불매운동이 장기화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가맹점주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중에 팔리는 제과·제빵 베이커리 제품의 90% 이상은 SPC가 납품하고 있다. 불매운동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을 뿐더러 애꿎은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불매운동 하는 소비자를 직접 접하는 건 주로 가맹점주”라며 “기업도 국내외 평판이나 이미지가 추락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겠지만 가맹점주는 고객이 줄면서 폐업 등 생계를 위협받는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