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부산시립미술관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 개막식에서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 안은미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지난 4월 22일 부산시립미술관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 개막식에서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 안은미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부산 사람들은 요즘 틈만 나면 시립미술관을 찾는다. 그림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명상하고, 춤도 보고, 요가도 하기 위해 간다. 지난 4월 22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에 참여한 관객은 2개월간 3만8000명. OO의 자리에는 ‘명상하러’ ‘체조하러’ ‘요가하러’ ‘강의 들으러’ ‘그리러’ 등 갖가지 동사들로 매번 달라진다.

미술관이 변신하고 있다. 화두는 ‘장벽 허물기’.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문화계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명작에 둘러싸여 요가한다

10월 16일까지 약 6개월간 열리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일명 ‘땡땡전(OO전)’의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100여 회에 달한다. 픽셀 아티스트 선우훈, 안무가 안은미, 화가 김종학 이우환 등 13명의 작가와 소장품 8점 등이 참여했다. 이 전시는 ‘100세 시대를 맞아 진정한 여가를 찾아가는 안내서와 같은 전시를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부산시립미술관은 ‘OO전’을 미술관이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무대로 삼고 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은 “여가를 잘 보내는 문제는 전 세대의 고민거리”라며 “시민들이 ‘스스로에게 필요한 진정한 여가’를 찾는 걸 돕기 위해 이번 기획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스페이스K ‘다니엘 리히터’ 전에서 열린 요가 클래스.  /스페이스K  제공
지난달 26일 스페이스K ‘다니엘 리히터’ 전에서 열린 요가 클래스. /스페이스K 제공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아시아 첫 개인전 ‘나의 미치광이 이웃’을 열고 있는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도 ‘미술관 요가 클래스’를 전시 기간 운영한다. 9월 28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요가 강사 황아영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난 전시에서 취미 여가 플랫폼 ‘프립’과 단발성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관람객 반응이 좋자 정규 프로그램으로 도입했다. 스페이스K관계자는 “세계적 작가의 작품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요가 수련을 하다 보니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위한 ‘듣는 전시’도 늘어

문화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시도 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장애인도 점자와 음성 해설로 작품을 똑같이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개막한 과천관의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선 수어해설과 음성해설, 점자 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과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 등 연말까지 4~6개 전시에도 도입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과 화면해설은 전시장 입구와 개별 작품 앞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개인 휴대폰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점자자료도 이용할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모두 함께 미술을 즐기는 ‘무장애(barrier free)’ 전시 감상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며 “국민 누구도 문화예술에 소외되지 않는 다채로운 문화 나눔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휠체어로 전시장을 어디든 이동할 수 있도록 무장애 동선을 만들었다. 포도뮤지엄 관계자는 “다양성을 테마로 하는 전시 취지에 맞게 장애인도 편하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림 감상

전시를 할 때마다 3~4t의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미술관들의 관행도 바뀌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석고와 합판 등으로 세운 임시벽을 재사용 가능한 모듈 칸막이 등으로 바꾸고 있다. ‘아트스펙트럼2022’와 ‘이안 쳉: 세계건설’의 전시장 가벽은 모듈 파티션으로 설치됐다. 전시장 조명도 2층을 제외하고 모두 LED로 교체했다.

종이 브로슈어 대신 디지털 가이드로 전시 해설과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모바일 티켓으로 종이 사용을 줄이고 있다. 리움은 지난달 20여 개 문화예술기관을 대상으로 실무자 ESG포럼도 열었다. 문화예술기관들과 함께 탄소배출량 정보와 관리 노하우를 공유하자는 취지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둔 건 2020년부터다. 세계 주요 갤러리는 ‘갤러리 기후연합(GCC)’을 결성해 작품 운송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미술관들끼리 작품 운송 때 화물 운송 거리를 최소화하고 작품 이동 동선을 미리 공유해 지역이 겹치면 한 번에 운송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