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치의 무차별 공습도 꺾지 못한 처칠의 의지
1940년 11월 14일 저녁. 영국 코번트리 상공에 휘영청 큰 달이 걸렸다. 신문에 쓰인 글도 읽을 만한 명월(明月)을 두고 영국인들은 ‘폭격기의 달’이 떴다며 불안해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낙하산에 매달린 불꽃들이 떠내려와 이미 환한 거리를 더 밝게 비췄다. 작전명 ‘몬트샤인(월광)소나타’가 개시된 것. 13대의 독일 폭격기들은 1800㎏짜리 사탄을 비롯한 고폭탄 500t과 소이탄 2만9000발을 유서 깊은 도시에 퍼부어 2294채의 건물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영국 전역에서 두려운 달밤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책마을] 나치의 무차별 공습도 꺾지 못한 처칠의 의지
《폭격기의 달이 뜨면》은 나치 독일의 대공습에 맞서 불굴의 의지로 영국 본토를 사수하는 항공전을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리더십을 되짚은 책이다. 1940년 5월 처칠이 총리로 임명된 때부터 1년가량 이어진 절체절명의 기간을 주로 다룬다.

책은 유려한 문장으로 스핏파이어의 영국 왕립공군(RAF)과 메서슈미트 Me109를 앞세운 독일 루프트바페(공군) 간의 치열한 공방전, 영·독 양국 정치인과 군인들의 명운을 건 작전 싸움과 치열한 정보전·선전전, 레이더(영국)와 위치 지정 빔(독일)의 첨단기술 대결, 공습 사이렌과 먼지밖에 남지 않은 도시에서 불안에 휩싸인 시민들의 삶과 강렬한 저항 의지를 씨줄과 날줄로 교차하며 장대한 서사시를 써 내려간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본격화해 소련 침공 전까지 집중적으로 이어진 영국 대공습은 영국인의 심신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40년 9월 7일 런던 중심부에 대한 대규모 첫 공습 이후 1941년 대공습이 끝날 때까지 영국 전역에선 4만465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5만2370명이 부상했다. 수도 런던은 57일 연속으로 야간 폭격을 받은 것을 비롯해 6개월간 강도 높은 야간 공습에 시달렸다.

공습의 공포는 역설적으로 밝고 아름다운 달과 연계돼 빚어졌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밝은 달이 뜨지 않으면 야간에 폭격과 교전이 가능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자연스레 보름달과 상현달, 하현달 같은 볼록한 달은 ‘폭격기의 달’로 불렸다. 달과 달빛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매혹적인 달이 뜰 때마다 “오늘 밤에 (적기가) 더 많이 몰려오겠지”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달빛의 서늘한 창백함을 이겨낸 것은 리더의 뜨거운 열정이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칠의 이 같은 다짐은 온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적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빚을 진 적은 없습니다”라는 격려는 RAF의 사기를 한껏 끌어 올렸다. “베를린은 언제 폭격할 건가요”라는 시민들의 질문에 “나한테 맡겨요”라고 주먹을 흔들며 호령하고, 폭격기가 오면 구경하겠다고 건물 지붕에 올라가는 처칠의 모습에 조지 6세는 “이보다 더 나은 총리를 보유할 수 없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런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영국인들은 나치가 전투기와 폭격기 2300대를 동원했던 ‘아들러타크(독수리의 날)’도, 화이트홀과 웨스트민스터사원, 런던탑, 영국박물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런던 대공습의 시련도 이겨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와 처칠문서보관소, 미국 의회도서관의 육필원고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처칠은 물론 주변인과 런던 시민들의 삶과 생각을 숨결과 심장박동까지 전해지듯 되살린 필력은 책이 지닌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흥분을 멈출 수 없는 책”(빌 게이츠),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된다”(오프라 윈프리)는 명사들의 추천사가 지나치지 않다. 유려한 영어 본문 번역에 비해 프랑스어 인용문과 독일어 고유명사 처리에서 어색한 점이 눈에 띄는 것은 옥에 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