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선점하라." 많은 전문가들이 남보다 앞선 시장개척을 강조하면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경영의 원칙이다. 시장에 먼저 진출하거나 그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복사기의 제록스,안전 면도기의 질레트,컴퓨터의 IBM,종이기저귀의 팸퍼스,레이저 프린터의 휴렛팩커드 등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러드 텔리스와 뉴욕대학의 피터 골더는 이런 원칙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불변의 마케팅 제1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원칙은 성공사례만 본 것일 뿐 실패사례는 분석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전 면도기는 질레트가 등장하기 20년쯤 전에 상품화됐으며 레이저 프린터 시장의 개척자는 휴렛팩커드가 아니라 IBM과 제록스였다고 한다. 인터넷 웹 브라우저 시장을 개척했던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최초의 인터넷 서점인 컴퓨터 리터러시의 시엘북스닷컴 등이 시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시장개척자라고 해서 반드시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지난 74년 이후 시장개척자의 실패율은 56%에 이른다는 얘기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시장의 지배자,즉 마켓 리더가 되는 것일까. 이들은 11년여간 66개 분야의 수백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시장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는 기업들의 5가지 특징을 뽑아냈다. 비전,끈기,혁신,헌신,자산 레버리지가 그 특징들이다. 최근 출간된 '마켓 리더의 조건'(최종옥 옮김,시아출판사,1만5천원)은 이를 설명한 책이다. 비전은 대량소비시장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다. 지난 70년대 중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원가절감과 기술향상을 통해 모든 책상과 가정에 컴퓨터를 설치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이들보다 먼저 컴퓨터 시장에 진출했으나 비전을 갖지 못했던 다른 회사들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리더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저자들은 틈새시장보다는 대량소비시장을 공략해야 하며 이를 위한 품질과 가격을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마켓 리더가 되려면 비전과 함께 온갖 역경과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끈기가 필요하다. 일본의 소니는 베타방식의 비디오카세트 녹화기를 개발하는데 20년간 매달렸다. 인화지 제조사였던 할로이드는 많은 대기업들이 이미 진출해있던 복사기 시장에 진입,14년간의 연구끝에 지난 60년 첫번째 상품 '제록스 914'를 시장에 내놓았다. 특히 할로이드의 설립자 조셉 윌슨은 건식 인쇄술을 활용한 복사기 개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변리사 체스터 칼슨의 기술을 믿고 회사주식은 물론 개인재산까지 털어 연구비로 쏟아부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제록스는 복사기의 대명사가 됐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이 부단한 기술혁신과 비전의 실현을 위해 위험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헌신이다. 또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금융자산을 조달하고 브랜드,명성,고객기반,인력 등의 회사 자산을 비전있는 사업부문으로 전환하는 자산 레버리지도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