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이동'이 시작됐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꽁꽁 얼어붙었던 투자심리가 풀리면서 은행권 주변만 맴돌며 안전운행하던 시중자금이 증시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은 한 달 사이에 4조원 넘게 줄어든 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해야 하는 주식 공모시장에는 올 들어 5조원이 넘는 개인자금이 몰렸다. 자칫 원금을 손해볼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 시장에도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다. 주식 투자를 준비하는 고객 예탁금 규모는 13조원을 훌쩍 넘어 투자자들이 공격적 투자로 선회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공모주시장 북적

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닥기업 공모주 청약 9건에 참여한 일반투자자 자금은 2조8292억원에 달한다. 청약증거금이 50%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5조6000억원이 넘는 뭉칫돈이 기업공개(IPO) 시장에 '러브콜'을 보낸 셈이다.

청약 경쟁률은 평균 292 대 1에 달한다. 지난 3일 마감한 뷰웍스의 공모주 청약에는 올해 최대인 7731억원이 유입되며 816 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한 관심도 공모주 못지않게 뜨겁다. 최근 기아차 코오롱 아시아나항공 BW 3건에 청약한 개인자금만 총 2조2760억원에 달한다. 공모주와 BW 청약에만 개인자금이 총 5조1000억원 넘게 들어왔다는 얘기다. 기아차 BW 청약에 들어온 기관 자금(5조9170억원)을 합치면 공모시장에 몰린 시중자금은 11조원이 넘는다.

박동명 굿모닝신한증권 방배지점장은 "일선 지점에서 피부로 느끼는 분위기는 과거 공모주 열풍에 못지않다"며 "청약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부 강남 큰손들은 수십억원씩 싸들고 공모주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공모주 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것은 은행 예금금리와 주가 상승률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코스닥시장에 갓 상장한 중국식품공업과 네오피델리티는 상장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주가가 공모가의 3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오는 19일부터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아차 BW는 현 주가 기준으로 40%의 고수익을 찜해놓고 있다.

◆파생금융상품도 관심



증시가 살아나면서 고수익 파생금융상품과 채권시장에도 햇살이 들고 있다.

코스피지수 또는 우량주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주식워런트증권(ELW)은 인기가 높다.

동양종금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발행된 ELS는 5876억원으로 전달(4236억원)보다 38% 증가했다. 특히 지난달 전체 ELS 발행 가운데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ELS가 전체의 85%에 달해 개인들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현상이 강해졌다는 평가다. 작년 12월엔 원금보장형이 전체 ELS의 절반에 그쳤다.

주가가 투자 방향과 반대로 갈 경우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ELW 거래대금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날 ELW의 거래대금은 7824억원으로 지난 주말의 종전 사상 최고치(7810억원)를 다시 갈아 치웠다. ELW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올 들어 1월 4526억원, 2월 5421억원,3월 6147억원으로 불어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7500억원으로 늘었다.

고위험 회사채에도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신긍호 한국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장은 "한 달 전부터 팔기 시작한 A등급의 회사채가 100억원어치 팔려 나가 BBB 등급 채권도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투자가 활성화되자 동양메이저와 한국저축은행 등은 투자부적격 등급인 'BB+'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증시 주변자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고객예탁금은 3월 한 달 동안 2조6407억원 늘었으며 이달 3일 현재 13조2834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예탁금이 13조원을 넘어선 것은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어선 2007년 11월 이후 1년5개월여 만의 일이다.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상장지수펀드 포함)은 한 달 동안 1조2763억원 늘어 85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시중자금의 블랙홀이었던 머니마켓펀드(MMF)에서는 3월 한 달 사이에 3조7402억원이 빠져나가 대조를 이뤘다.

조진형/정인설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