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노린 '취업 메뚜기'
인력난 中企들 두 번 운다

"1년 이상 일할 사람 못 찾아"
면접도 안오는 '노쇼族'까지
구직자들이 지난 17일 서울 도화동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구직자들이 지난 17일 서울 도화동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대전에서 의료기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모 사장은 고질적인 구인난 외에 고민이 하나 늘었다. 신입직원들이 입사 후 1년만 넘기면 눈에 띄게 게으름을 피워서다.

박 사장은 “1년 근무한 뒤 해고당하면 4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놓고 태업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실업급여를 세 차례나 받은 직원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6개월 일하고 "해고해주세요"…中企 '실업급여용 단타 취업'에 몸살

청년 실업률은 최근 5년 새 9%를 웃돌 정도로 심각한 반면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1년 이상 일할 근로자를 찾을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실업급여를 노리고 회사를 옮겨다니는 ‘메뚜기 취업족’, 구직활동을 증명하기 위해 이력서만 내고 면접 장소는 물론 합격 후에도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족’이 급증한 것이 중소기업 인력난을 더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지급액은 전년 대비 25.4% 증가하며 사상 처음으로 8조원(8조913억원)을 넘어섰다. 실업급여 확대정책이 재취업을 유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용 미스매칭’을 부추긴다는 것이 현장의 불만이다.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반면 중소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은 경영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 부족을 꼽고 있다.

소프트웨어업체를 운영하는 강모 대표는 “업계 중상위권 연봉에도 신입직원 대부분이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둔다”며 “자발적 실업이 아니라 구직을 유인하도록 정책을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中企 '단타 구직자' 골머리
"가뜩이나 사람 구하기 힘든데…실업급여 조건만 채우고 관둬"


서울 도화동 삼창프라자빌딩 4층의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지난 17일 오후 실업급여 설명회를 들으려는 구직자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설명회 참석을 통해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얻기 위해서다.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고용센터와 달리 중소기업들은 채용면접 때나 합격 후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 현상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실업급여 정책이 구직자들의 취업 의지를 꺾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 정보기술(IT)기업의 한 사장은 “이력서는 꾸준히 들어오는데 면접장에 오지 않거나 최종 합격한 뒤 나타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며 “고질적인 인력난에다 인력운용의 예측 가능성까지 떨어져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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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잡아놓고 ‘노쇼’

직원이 30명 수준인 경기 김포의 한 유통업체는 들고나는 직원들로 수시로 채용공고를 낸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채용공고를 통해 한 명도 뽑지 못했다. 면접 장소에 구직자가 나타나지 않아서다. “지금 가는 중”이라고 한 뒤 오지 않거나 면접날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대부분 고용노동부의 고용정보시스템 ‘워크넷’을 통해 입사지원서를 낸 경우였다. 이 업체 사장은 “일자리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을 남길 목적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이제는 워크넷 이력서는 받지 않고 아는 사람 소개로만 면접하고 채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말했다.

최근 중소기업 인사팀은 가짜 구직자 혹은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될 정도로만 일하고 퇴사하려는 ‘단타 근로자’를 파악하는 것이 큰일이다.

실업급여 수급자로 인정받으려면 기존 직장에서 최소 180일(고용보험 가입기간) 이상 일한 뒤 ‘비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점을 확인받고 거주지 고용센터에 실업신고를 해야 한다. 워크넷에 구직등록을 하는 등 규정에 따라 수급자격 인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몇 주 단위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받는 게 중요하다.

6개월~1년 일하면 ‘저 해고해주세요’

자발적인 퇴사자는 원칙적으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기업 대표들은 “퇴사자가 사정하면 합의해 실업급여를 받도록 해준다. 회사에 손해되는 것은 없으니…”라는 반응이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최모씨(31)는 본인과 주변 친구들이 실업급여 수혜자들이다. 식품 중소기업을 퇴직한 뒤 최씨는 한 달 동안 실업급여 160만원을 수령했다. 그는 “퇴사 사유를 ‘회사 사정으로 인한 계약 종료’로 신청해 받을 수 있었다”며 “사장님이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병원에서 일했던 친구는 1년 근무하고 4개월 실업급여를 받고, 또 다른 친구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단기 근로자들도 실업급여 대상에 포함되면서 아르바이트업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만연해 있다. 대구에서 소규모 시행사를 운영하는 배모씨는 아르바이트 근로자를 6개월 단위로 교체하고 있다. 고용기간을 짧게 가져가면 고용주는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 근로자도 실업급여 수급 최소 기간(180일)만 채울 수 있어 나쁠 게 없다. 배씨는 “퇴사와 함께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지난 2년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은 직원들이 20명은 넘는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수급자 사상 최다

실업급여 제도를 이용하는 구직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관련 법 개정으로 수급대상은 기존 ‘이직 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자에서 ‘24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자로 확대됐다. 초단기 근로자들도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급액은 퇴직 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수급기간은 90~240일에서 120~240일로 확대됐다.

실업급여 설명회장에서 만난 이모씨는 “회사와 협의해 퇴직했는데 실업급여 신청에 성공하면 매월 16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며 “블록체인 관련 대기업 채용에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누적 실업급여 지급자 수는 144만4000명에 달했다. 전년(131만5000명) 대비 9.8% 증가하며 사상 최다치를 경신했다. 고용노동부 측은 “수급자, 수급액 모두 늘었지만 수급자격과 구직활동을 철저히 검증하기 때문에 미인정자도 함께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장은 “사회복지시스템이 강화되면서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생활 안정을 꾀하려는 사람이 20대를 중심으로 대폭 증가했다”며 “정책 취지는 좋지만 중소기업 구인난을 부추기는 점 등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기열/민경진/나수지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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