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됐음에도 정부는 상반기가 끝날 때까지 줄곧 “경기가 ‘상저하고(上低下高)’의 모습으로 하반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KBS 대담에서 “2분기부터 점점 상황이 좋아져 하반기에는 2% 중후반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며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을 거뒀다”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난 3분기 성장률이 0.4%에 그치면서 이런 정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됐다.

'경기 오판'이 부른 성장률 참사…커지는 'L자형 장기침체' 우려
정부의 경기 오판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거세다. 최근까지도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방안(8월), 공정경제 성과 조기 창출방안(9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경영참여 허용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10월) 등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을 줄줄이 내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경제를 냉정하게 진단했더라면 경기 하강 시점에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노동·환경·공정거래 정책을 일거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규제 정책은 민간 경기 위축으로 이어졌다.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최근 민간투자 부진의 배경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투자를 가로막는 대표적 요인으로 경제정책 불확실성(42%), 비용 부담(24%), 수요 부진(23%), 규제(11%) 등을 꼽았다.

문제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회복 기미 없이 저점 상태에 장시간 머무는 ‘L자형 장기침체’에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직적인 노동시장 등 구조적 문제로 생산성이 하락하는데 정책 충격과 대외 경기 악화까지 겹치면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 성장률을 좌우하는 잠재성장률도 가파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6~2020년 2.5%였던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2021~2025년 2.1%, 2026~2030년 1.9% 등으로 계속 하락할 전망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잠재 성장률은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꿔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정부와 한은의 전망이 여전히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외 연구기관은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9월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2.0%를 기록하고, 내년에는 더 떨어져 1.8%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