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움츠리는데… 석유화학업체는 '거꾸로 증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생산설비 증설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추진 등으로 국내 제조업 설비의 해외 이전이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토탈은 이달 3620억원을 들여 충남 대산공장의 폴리에틸렌(PE) 연간 생산 능력을 기존 72만t에서 112만t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폴리에틸렌은 원유에서 얻어진 플라스틱 화학물질의 일종으로 각종 용기와 병, 포장용 필름, 건축자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한화토탈은 올 4월에도 5395억원을 투자해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NCC 증설에 나섰다.

국내 화학업계 맏형 격인 LG화학도 지난해 10월 2870억원을 들여 충남 대산공장 에틸렌 생산 능력을 104만t에서 127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2019년 증설이 끝나면 세계 NCC 단일 공장으로는 최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회사는 지난 9월에도 전남 나주의 친환경 가소제 공장 증설에 23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독일계 화학회사인 바커도 같은 달 울산공장에 826억원을 들여 건축용 접착제와 바닥재로 쓰이는 ‘재분산성 폴리머 파우더’ 생산 능력을 기존 4만t의 두 배인 8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국내 석유화학업체가 앞다퉈 증설에 나서는 이유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석유화학제품 수요 증가로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틸렌 등 주요 화학공장 증설이 2~3년씩 걸리는 데다 2015년부터 이어져온 저유가 여파로 세계적으로 생산 설비 증설이 뜸했던 것도 이유로 꼽힌다. ‘슈퍼사이클’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황을 맞은 석유화학업계는 곳간도 넉넉해 투자 여력이 풍부한 편이다. 업계 1, 2위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연간 영업이익 3조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호황의 지속 여부는 국제 유가라는 변수에 달려 있다. 배럴당 70달러를 넘으면 가스(미국)와 석탄(중국) 대비 원유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 경우 최근 대규모 증설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셰일가스 채굴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50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국제 유가가 60달러를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내 석유화학업계 증설이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