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술 삼키는 차이나머니
중국 기업이 독일 기업을 인수하겠다며 제안한 금액이 올 들어 현재까지 91억달러(약 10조5000억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들어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이전 최고 기록인 2014년의 26억달러를 뛰어넘었다”며 “그만큼 기술 유출에 대한 독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올 들어 총 24건의 인수 제안을 독일 기업에 보냈다. 거의 1주일에 한 번꼴이다. 건수 기준으로 2014년 한 해 28건이던 종전 기록을 곧 넘어설 기세다.

지난달 중국 가전회사 메이디그룹이 독일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를 인수하겠다며 44억유로(약 5조8000억원)를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쿠카는 스웨덴과 스위스에 기반을 둔 ABB, 일본의 화낙, 야스카와전기와 함께 세계 4대 산업용 로봇업체로 꼽힌다.

올 1월 중국화공그룹(CNCC)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독일 산업용 기계업체 크라우스마페이를 9억2500만유로에 인수했고, 3월엔 베이징엔터프라이즈홀딩스가 독일 1위 폐기물소각발전업체 EEW를 14억유로에 인수했다.

독일 기업의 우수한 기술과 제조 노하우를 습득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목적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저임금 단순조립 위주의 제조업과 부동산·인프라 투자 중심의 경제가 한계에 달하며 중국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6.9%로 떨어졌다. 7%를 밑돈 것은 1990년 이후 25년 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7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6.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의 안드레아스 그릴리 수석컨설턴트는 “중국의 임금 경쟁력은 이제 사라졌다”며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세계 일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중국 정부도 깨달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비상이 걸렸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 때문이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쿠카가 중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유럽이 컨소시엄을 구성, 쿠카를 인수하는 방안을 지난주 제안했다. 그는 지난 8일엔 경제를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 국가(중국)의 투자자에게는 더욱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롤랜드 클로제 독일 FOM전략금융연구소 교수는 “자동화와 인더스트리 4.0(제조업 혁신 4.0)은 독일 산업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그 핵심기술을 보유한 쿠카에 대해 중국 기업이 제안한 44억유로는 그리 큰 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이 제안한 유럽 기업 인수는 올 들어 119건에 이른다. 독일 24건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15건, 스위스가 11건 등이다. 이 선 언스트앤영 컨설턴트는 “독일과 유럽은 중국 기업의 인수 시도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