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낀 검은 먹구름.’

알베르토 알레시나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럽 재정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유럽에 불확실성이 있기는 하지만, 유럽 각국은 유로화 도입을 ‘역사적인 실패’로 기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종적으로 유로존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날 참석한 연사들이 모두 알레시나 교수처럼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보다 조심스러운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해법이 없다’는 이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남유럽 국가들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면 위기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별도 경제구역 설정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남유럽, 투자 대신 무분별한 소비”

참석자들은 유럽 재정위기를 유로화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알레시나 교수는 “유로존 국가 간 너무 큰 경쟁력 차이가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유로화를 처음 도입할 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장기 경쟁력 저하 요인을 없애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국가별 성장 수준이 달라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본조달 비용(국채가격)이 높아 민간에 대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임금인상률이 지나치게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유럽 국가로 자금이 흘러들어간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무분별한 소비로 이어진 것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이토 다카토시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장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10년 전에는 많은 학자들이 유로존 가입 후 남유럽 국가의 인건비와 물가가 상승하는 것에 대해 ‘중진국가로 통합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해석했다”며 “하지만 너무 낙관적인 해석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경쟁력 회복”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참석자들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빚더미에 올라앉은 국가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일형 국제통화기금(IMF) 중국 상주 대표는 “가장 시급한 것은 성장의 모멘텀을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남유럽 국가들이 구제금융 등을 통해 빠르게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임금이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도록 경제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임금 현실화의 방법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폴 로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존의 법과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별도의 개혁 지역을 설정해 성장을 촉진하는 ‘차터 시티’ 모델을 남유럽에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낮은 수준의 재정통합’에 해당하는 재정정책 권한 조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알레시나 교수는 “독일의 도움을 받는 국가들은 재정 주권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은행의 감독권을 유럽연합(EU)의 중앙기구에 일부 위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10년간은 각 국가들이 EU 중앙기구에 권한 위임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EU가 존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로존, 그래도 살아남을 것”

유럽 각국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날선 비판도 쏟아졌다. 알레시나 교수는 “스페인 정부는 유럽 최악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며 “당장 유로안정화기구(ESM)에서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판국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본인들도 헷갈리고 있고(confused), 남들도 헷갈리게 한다(confusing)”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유로존의 해체를 점치는 목소리는 없었다. 알레시나 교수는 “내기를 한다면 유럽과 유로존이 살아남는 쪽에 걸겠다”고 했다. ‘스페인 국채를 사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값만 맞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답했다.

이상은/고은이/정성택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