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으로 경제 위기 대응 및 민생 관련 법안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한 예산 조기 집행에도 차질이 생겼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는데 여야는 '멱살잡이'하느라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정부는 수출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금 3000억원을 새해 첫날 국고 수표(국고금 지급 수단으로 발행하는 수표) 1호로 끊어 줄 계획이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법정자본금 한도 4조원이 꽉 차서 증자를 하려면 이를 늘려야 하는데 수출입은행법 개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어서다. 현재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8%대.자본 확충 없이는 추가 대출이 불가능하다.

대부업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하면서 1일부터 최고 이자율 제한(연 49%)도 풀렸다. 금융위원회가 대부업체의 이자율 상한선 규정을 2013년까지 연장키로 하는 법 개정안을 냈지만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내야 하는 이자는 연 49%를 넘을 수 있다. 금융위는 당분간 대부업체 차입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됐다.

기업의 투자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출자총액제한 제도 폐지법안이나 산업자본의 금융투자를 손쉽게 해주기 위해 은행지분 소유제한을 4%에서 10%로 높여주려는 은행법 개정안(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도 벽에 부닥쳤다.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외국환평형기금의 원화채권과 외화채권 발행을 신축적으로 조정하려던 계획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국채법 제4조는 외평기금 한도 내에서라도 외화 외평채를 신규 발행하려면 국회의 의결을 얻도록 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불안정성과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그때그때 발행 규모를 탄력적으로 조절하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법 개정안까지 나왔지만 다른 법들과 함께 잠만 자고 있다.

교육세 폐지법률안 등 목적세법 정비 법안도 만약 통과가 무산될 경우 이미 개정한 개별소비세 주세 교통세 등 관련 세법 개정안을 모두 다시 고쳐야 한다. 얼마전 시행한 세법을 다시 고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제약하고 있는 국가재정법도 미리 손질하지 않으면 갑자기 재정 투입을 늘려야 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시가 바쁜데 싸우고만 있는 국회는 어느 나라 국회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