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투자 선도사 로베코가 한국 기업 지배구조에 날카로운 평가를 내놨다. 제품 경쟁력은 세계적이지만, 투명성과 책임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처럼 명시적 수익성 목표와 제도적 압박이 뒷받침돼야 밸류업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로베코의 진단이다.
[한경ESG] 리더 - 로니 림 로베코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지속가능투자 총괄
로베코(Robeco)는 지속가능 투자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일찍부터 명성을 쌓아온 자산운용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를 만든 로베코샘의 모회사다. 지수 사업 부문은 2020년 S&P 글로벌에 매각됐고, 로베코샘은 흡수 합병됐으나 그 전문성은 로베코의 ESG 투자 역량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베코는 2025년 6월 기준 2460억 유로(약 398조 원) 규모의 운용자산 중 99%를 ESG 통합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ESG 기반 포트폴리오 관리로 충분한 초과 수익을 내고 있는 덕분이다. 최근 로베코의 관심은 한국에 쏠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한국 제품과 달리 기업 지배구조는 낙후돼 있다는 것이 로베코의 진단이다. 로니 림 로베코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지속가능투자 총괄 겸 홍콩거래소(HKEX) 상장위원회 위원에게 한국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과 ESG 투자에 대해 물었다.
-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이유는 지배구조다. 구체적으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부족, 다수의 ‘모자(母子)’ 계열사 보유, 생산성이 낮은 자산을 보유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성 부족이다. 한국 상장사는 총자산이익률(ROA) 개선 의지와 주주환원 정책을 포함한 재무 전략을 더욱 명확히 공시해야 한다.”
- 한국과 일본의 ‘밸류업’ 정책 차이는.
“양국의 차이는 2가지다. 첫째, 일본 기업은 투입자본수익률(ROIC)과 자기자본이익률(ROE)에 대한 명시적 목표를 담은 ‘가치 창출 계획’을 공개하도록 요구받는다. 둘째, 도쿄증권거래소(TSE)는 신뢰할 만한 가치 창출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상장사를 공개적으로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제도적 관행이 도입되고 엄정한 집행이 이뤄진다면 ‘밸류업’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다.”
- 투자 관점에서 로베코가 주목하는 ESG 경영 개선 요인은.
“지배구조 개선 노력과 관련해 독립 사외이사 선임 확대 등 ‘표면적’ 개선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재무 성과 개선 가능성을 높이는 근본적 조치가 수반될 때 우리는 더욱 단호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 외에도 상장사의 기후·탈탄소 전략, 집중투표제 도입,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를 다루는 방식 등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 한국 시장에서 관여(인게이지먼트) 투자전략은 어떻게 구사하나.
“외국인 소수주주로서 우리는 건설적 관여(인게이지먼트) 접근이 한국에서도 효과적일 것이라 본다. 다만 한국 상장사의 기후 리스크 인식은 상대적으로 성숙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한다. 글로벌·유럽계 투자자는 기후변화에 대한 규제·재무·물리적 리스크에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최우선으로 본다.”
- 홍콩거래소는 지배구조, ESG 경영을 어떻게 감독하나.
“홍콩증권거래소(HKEX)는 지난 7월 기업 지배구조 코드(CG Code)를 개정했다. 독립 의장이 없는 회사에 ‘수석 독립 사외이사’ 지정을 요구하는 등 이사회 효율성 제고와 위험관리, 내부통제 시스템의 연례 점검 의무화가 포함됐다. 또 2025년 1월부터 상장사의 기후 관련 공시 요건을 강화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기준(IFRS S)과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 기업가치 제고에서 지배구조 개혁과 ESG 경영의 역할은.
“장기투자자로서 우리는 ‘좋은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이 궁극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더 나은 성과를 제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한국의 최근 지배구조 개혁(상법 개정 등)은 상장사가 소액주주에게 더 잘 응답하게 하고, 동시에 기후 리스크와 관련한 주주 관여를 제도화하는 데 핵심적이다.”
- 한국 기업에 한마디.
“지배구조 개선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문제다. 많은 한국 기업은 제품 경쟁력에서 세계를 선도한다. 그러나 글로벌업계의 모범적 지배구조 관행도 적극적으로 채택할 수 있을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이사회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는 것이다. 또 명확한 재무전략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재무전략’이란 자본비용을 초과하는 경제적 수익(긍정적 ROIC)을 창출하는 사업(자회사·관계회사 포함)에만 장기적으로 잔류·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의미한다. 목표를 달성한 후 초과 현금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에게 환원해야 한다. 자사주 매입도 좋지만, 투자자들은 경영진의 약속으로 이뤄지는 ‘안정적 배당정책(페이아웃 레이시오)’을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