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 논란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대학별 정원 배분 효력을 멈춰달라며 의료계가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다. 서울고법은 의대 교수, 전공의 등이 낸 소송에 대해선 이들이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했다. 또 의대생들에 대해선 소송 자격은 인정되지만 의대 증원을 멈출 경우 필수·지방의료 회복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정부는 이대로 가면 2035년에 의사가 1만 명가량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 등 3개 기관 보고서와 대학별 수요조사 등을 토대로 내년부터 5년간 연 20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가 반발하고 한꺼번에 2000명을 늘리는 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내년 대입에 한해 각 대학이 늘어난 정원보다 적게 뽑을 수 있게 허용했다. 그 결과 내년 대입에선 의대 정원을 1500명가량만 늘리기로 했다. 의사와 의대생들은 이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증원 백지화를 요구했지만 서울고법은 정부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정책 판단을 법원이 존중했다는 의미도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30일 정부 측에 2000명 증원의 근거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법원 판결 전까지 의대 증원과 관련한 최종 결정을 미뤄달라고 했다. 당시 의사들은 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그런 만큼 이번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 의료계 일각에선 대법원에 재항고할 방침이라고 하는데 발목잡기로 비칠 뿐이다. 대법원은 고법 판단에 대해 법리 심사만 하기 때문에 고법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련병원을 이탈한 지 벌써 3개월이 다 돼 간다. 전공의 빈자리를 의대 교수와 간호사들이 어렵게 메우면서 환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동맹휴학으로 의대생 집단유급 우려가 커지면서 내년도 신규 의사 배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혼란도 길어지고 있다. 이번 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런 파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부는 구체적인 의료개혁 방안은 물론 2026년 이후 의대 정원에 대해선 여러 가능성을 두고 논의하겠다고 했다. 의사들도 집단행동을 멈추고 정부와 머리를 맞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