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소프트뱅크의 인공지능(AI) 개발을 위한 슈퍼컴퓨터 정비에 최대 421억엔(약 3700억원)을 지원한다고 10일 발표했다. 앞서 자국 통신기업 KDDI 등 5개 회사의 슈퍼컴퓨터 개발에 총 725억엔을 보조하기로 결정한 데 이은 조치다.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치는 모습이다.

소프트뱅크 AI 슈퍼컴 개발…日, 421억엔 지원
일본 경제산업성은 소프트뱅크에 슈퍼컴퓨터 정비 비용의 3분의 1을 보태기로 했다. 데이터 학습의 기반이 되는 슈퍼컴퓨터 설치를 지원해 일본 내 생성형 AI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소프트뱅크는 슈퍼컴퓨터를 자사 생성 AI 개발에 사용하는 것은 물론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외부 개발자도 쓰도록 한다.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은 이날 “생성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계산 자원을 정비하는 것은 경제안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 관점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세계 최대 스타트업 펀드인 비전펀드는 최근 자산을 상당 부분 매각하고 AI와 반도체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비전펀드의 미국 상장 기업 자산은 2021년 말 이후 290억달러(약 39조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손 회장이 한때 집착한 벤처캐피털 투자에서 벗어나 반도체와 AI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전환하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설계업체 ARM 투자 성공에 영감을 받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19일 AI용 슈퍼컴퓨터 개발을 위해 KDDI를 비롯해 GMO인터넷그룹, 사쿠라인터넷, 루틸리아, 하이레조 등 5곳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기업별 슈퍼컴퓨터 정비에 들어가는 비용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지원한다. 기업별 보조금은 19억∼501억엔이다.

특히 KDDI가 AI 슈퍼컴퓨터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DDI 등은 미국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H100’ 등을 조달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KDDI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AI를 개발하려는 기업과 연구자가 슈퍼컴퓨터를 원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기업의 슈퍼컴퓨터 개발을 지원하는 배경에는 AI가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국내 AI 학습 기반이 취약해 현재는 미국 아마존웹서비스나 마이크로소프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