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유 피터앤김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는 7일 홍콩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려면 '중재 허브'부터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박시온 기자
김갑유 피터앤김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는 7일 홍콩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려면 '중재 허브'부터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박시온 기자
"한국의 중재분야 법률서비스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인정 받는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기대를 뛰어넘어야 할 차례입니다."

김갑유 법무법인 피터앤김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는 7일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 총회 2024'를 계기로 홍콩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제중재 업계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지만, 지금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한국 중재의 위상이 상승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1세대' 국제중재 변호사... "20년 만에 상전벽해"


김 대표는 2002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국내 첫 국제중재 소송 그룹을 만든 '1세대' 국제중재 변호사다. 한국 정부와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 간 46억7900만달러 규모의 투자자-국가 분쟁(ISDS)에서 정부를 대리해 배상액을 2억1650만달러로 대폭 삭감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인 최초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부원장과 아시아인 최초 ICCA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김 대표가 2019년 태평양에서 독립해 설립한 피터앤김은 아시아 첫 중재 전문 법무법인이다. 매년 세계 20위권 중재 로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 세계 중재 시장에서 한국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2004년 ICCA 총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도 중재하는 사람이 있냐'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중재를 이야기할 때 한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며 "예전에는 인정받기 위한 위치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기대를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K-중재의 장점으로는 '우수한 인력'을 꼽았다. 그는 "국제중재는 언어와 법률적 실력, 인간적 매력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분야"라며 "중재에 도전하는 젊고 실력 있는 법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금융 허브에 앞서 '중재 허브' 돼야


김 대표는 이달 5일부터 나흘간 일정으로 홍콩에서 열린 ICCA 총회에서 법무부와 함께 2028년도 총회 유치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중재허브'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률적 안정성이 보장돼야 금융 회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법률허브가 되면 금융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며 "법률허브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기업 간 분쟁을 다투는 중재허브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인 금융사들이 몰려드는 홍콩·싱가포르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 법원 시스템의 안정성은 두 국가 못지않게 충분하지만, 법률 시장의 국제성은 분명히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만큼 분쟁 발생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분쟁 역시 국제 비즈니스의 일부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예측하기도 힘들고 다국적 기업일수록 나라별 이해관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기업의 경쟁력은 분쟁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ICCA 총회 연사로도 참여했다. '국제중재의 인간적 측면'을 주제로 내건 이번 총회에서 그는 국가별 법체계의 차이가 중재인과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대륙법 국가라 영미법계 중재인들이 일을 처리할 때 번역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고객과의 오해를 방지하려면 중재 로펌이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후 인공지능(AI)이 중재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그는 "현재는 AI가 자료 정리나 검색 수준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AI 활용 기준을 세워야 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종국에는 인간이 AI의 결정을 따라야 할지 말지의 문제로 귀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