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공사비와 금리 고공행진 등으로 용산 강남 등 서울의 알짜 정비 사업지마저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찰이 여러 차례 반복된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비를 올리지만 수의 계약자조차 찾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공사비 문제가 지난해 이후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지를 옥죄고 있다. 이미 원자재값과 인건비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건설사는 당분간 선별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방침이다.
'공사비 갈등'에…용산 산호도 시공사 선정 불발

○한강변 용산 산호도 ‘시큰둥’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용산 산호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15일 시공사 입찰을 마감했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1977년 지어진 원효로4가의 산호아파트는 기존 지상 최고 12층, 6개 동, 554가구를 헐고 새로 지상 최고 35층짜리 7개 동, 647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원효대교 북단 인근으로, 한강을 조망할 수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2월 현장 설명회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호반건설, HDC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등 8개사가 참석했다.

조합은 당초 공사비로 3.3㎡당 830만원을 제시했다. 대형 건설사는 공사비가 원자재값 상승 등을 반영하면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용산 한강변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입찰을 검토했지만 ‘하이엔드 브랜드’로 짓기엔 공사비 단가가 맞지 않는다”며 “앞으로 원자재값과 인건비 등이 얼마나 오를지 가늠할 수 없어 적어도 손해 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드는 사업장만 들어간다”고 말했다.

한때 과열 양상을 보인 강남권 사업지도 수주전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같은 날 입찰 마감한 송파구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입찰엔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참여했다. 이미 두 차례 시공사 입찰이 유찰되고 수의계약으로 전환한 뒤에야 겨우 시공사를 찾았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으면 2회 유찰 후 단독 입찰을 허용해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

올해로 준공 40년 된 가락삼익맨숀은 최고 30층짜리 아파트 16개 동, 1531가구로 탈바꿈한다. 서울 지하철 3·5호선 오금역과 방이역을 걸어서 갈 수 있는 ‘더블 역세권’이며, 한강공원도 인접해 있다. 작년 12월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 당시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입찰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지만, 대우건설이 포기했다.

○“적정 공사비 돌파구 찾아야”

업계에선 “수의계약이라도 찾으면 다행”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송파구 잠실동 우성4차는 지난달 19일 네 번째 입찰공고를 냈다. 지난해 12월 첫 공고 때 조합은 공사비로 3.3㎡당 760만원을 책정했다. 아무도 입찰하지 않자 3.3㎡당 810만원까지 올렸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미지근한 반응이다.

마포구 마포1-10구역 재개발조합은 최근 공사비를 1050만원까지 높여 재입찰에 나섰다. 작년 10월(3.3㎡당 930만원)보다 10%가량 높인 가격이다. 포스코이앤씨만 두 차례 단독 입찰에 참여해 수의계약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은 기존 사업장도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만큼 신규 수주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시멘트, 철근 등 주요 자재값이 최근 3년 새 50%가량 뛴 데다 안전 관리 등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2020년 12월~2023년 12월) 철근 가격은 56.6%, 시멘트는 46.8% 올랐다.

적정 공사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태진 대한건설협회 서울시회장은 “안전관리비 부담을 원가의 2~3% 정도로 잡는데 실제는 이를 웃돈다”며 “대다수 건설사가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엔 이란·이스라엘 사태로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원자재값 추가 인상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적정 공사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