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증거 입증 쟁점…소송제기 4년만에 5월 22일 선고
"볏짚빵 먹으며 강제동원" 日가와사키중공업 소송 변론종결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을 상대로 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손해배상 소송이 장기간 지연되다 4년여만에 변론 종결돼 조만간 법원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광주지법 민사3단독 박상수 부장판사는 17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김상기 씨의 유족이 일본기업 가와사키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변론을 4년여만에 종결했다.

이날 마지막 변론기일에서 가와사키 측 변호인은 "손해배상을 요구할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다른 유사 재판에서 반복된 논리와 함께 "원고의 진술서 외 피해를 인정할 사유(증거)가 없다"며 피해자가 거짓으로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꾸몄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김씨 측 변호인은 "김상기 씨는 강제동원피해심의원회를 통해 피해 사실을 인정받아 위로금 지급 결정을 받았다"며 "80여년 전 발생한 사건으로 당사자가 사망하고, 증거 증언을 찾기 힘든 사건이지만 위로금 지급 결정 등이 기록된 공적 기록으로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혹시 피고 가와사키중공업이 전범 기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전범 기업임을 증명하는 자료를 추가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5월 22일 열 계획이다.

사건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에 따르면 김상기 씨는 1945년 2월 일본 효고현 가와사키 주식회사에 강제 징용돼 6개월여간 강제노역했다.

당시 순천시에 거주하던 김씨는 갑자기 징용 영장을 받고, 일본으로 끌려가 가와사키중공업의 기차 차량 제조공장에 노역했다.

태평양전쟁 말기로 패색이 짙었던 일본 본토는 당시 지옥과 다름없었다.

미군 폭격기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군수시설에 대한 폭격을 이어가 일을 하다 방공호에 숨기를 반복했고, 전투기에서 쏘는 기관총이 머리를 스치는 위협도 겪었다.

혹시나 도망갈까 봐 기숙사 외출도 금지됐고, 식사는 잡곡밥에 볏짚을 갈아 만든 빵이 나왔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김씨는 겨우 귀국했지만, 급여를 받지 못했다.

김씨는 생전 남긴 진술서에 "징용 시기 하루에도 몇번씩 생명에 위협을 느꼈고, 당시 겪었던 정신적 피해는 글로 표현할 수도 없다"고 적었다.

이번 소송은 2020년 1월 제기됐으나, 코로나19 탓에 소장 송달이 지연됐고, '헤이그 송달'을 거치느라 몇 년간 공전하다 지난해 변론이 시작됐다.

헤이그 송달협약은 협약 체결국 간 재판을 진행할 때 관련 서류를 송달하기 위해 맺은 국제 업무협약으로, 한일 간 소송 서류는 한국 법원-법원행정처-일본 외무성-일본 법원-당사자 경로로 전달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