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오르고 월세는 부담"…2030 전세난민, 서울서 살아남는 법
3년차 직장인인 30대 A 씨는 최근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오피스텔에 거주했는데,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 인상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뒤여서 A 씨는 주변 오피스텔과 빌라 전세를 알아보고 있지만, 1년 새 오른 시세에 추가 대출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는 “월세로 옮기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라며 “애매한 고금리 탓에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는 방안도 어려워 경기 외곽으로 이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전세 매물 안내문. 뉴스1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전세 매물 안내문. 뉴스1
A씨 사례처럼 최근 높아진 전세 시세에 서울 거주를 포기하고 수도권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도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선 정부의 정책 대출이나 지원을 적극 활용해 부담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세가 상승에 전세난민 늘어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선 ‘전세난민’이란 자조 섞인 표현이 나온다. 높아진 거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하는 경우를 뜻한다. 지난해 대학교를 졸업한 B씨는 강남구 소재 기업 취업에 성공했지만, 집은 경기 하남에서 구했다. 서울 내 집 값이 부담스러웠고, 보증금이 낮은 곳은 편의시설 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B씨는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던 때보다도 거주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전경. 한경DB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전경. 한경DB
B씨의 사례처럼 전세난민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에도 경기도 또는 인천으로 전입한 인구는 10만 명이 넘는다. 전체 전입 인구의 30%에 달한다. 특히 전입을 선택한 10만 명 중 대다수는 주택 문제를 이유로 선택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커진 전세사기 불안감은 전입을 더 부추기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보증금의 빌라·다가구가 많은 서울 강서구는 ‘전세사기’의 여파로 청년에게는 “가선 안 될 동네”로 찍혔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전셋값이 올라서 남고 싶어도 남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 대표는 “젊은 세입자 중에 갱신권조차 쓰지 않고 나가겠다는 경우가 지난해부터 늘었다”며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이 있다 하더라도 집주인이 돈을 못 돌려주면 귀찮아진다는 생각에 수요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고공행진 계속하는 전세가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다가구 수요가 아파트로 옮겨가며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KB부동산이 지난 11일 발표한 아파트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일주일 새 0.12% 올랐다. 전국 평균 상승률(0.03%)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상승 폭은 0.08%에 달한다.
"전세 오르고 월세는 부담"…2030 전세난민, 서울서 살아남는 법
서울은 강동구(-0.01%)를 제외한 모든 자치구가 상승세를 기록했다. 동대문구가 0.35% 상승하며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뒤를 이어 강북구(0.33%)와 도봉구(0.25%), 영등포구(0.22%) 등도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 내에서도 비교적 시세가 낮은 지역의 상승률이 두드러진 셈이다. 업계에선 자금 사정이 비교적 어려운 하급지 소형 아파트의 전세 상승률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사정은 수도권도 비슷하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는 0.44% 오르며 수도권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안산시 단원구(0.3%)와 수원시 권선구(0.27%), 부천시 소사구(0.24%), 김포시(0.23%)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 송파, 강남, 서초 등의 상급지는 자녀 교육에 따라 수요가 움직이는 반면 강북구와 도봉구, 영등포구 아파트는 빌라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옮겨간 데 따른 영향이 크다”며 “청년들이 전세 시세 상승에 더 취약한 구조”라고 했다.

“정책대출·지원 활용 필수”

전문가들은 전·월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선 정부가 제공하는 정책대출이나 지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이 지원 대상임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비싼 이자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주거비 지원 폭은 점차 넓어지는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청년월세 특별지원' 사업의 거주요건을 폐지하며 혜택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보증금 5000만원 이하 및 월세 70만원 이하인 경우에 대해서만 월세 지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 같은 기준이 현 시세와 맞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아예 조건을 없앤 것이다. 지원 기간도 한 사람당 최대 2년으로 연장키로 했다.
한 시중은행에 마련된 전세사기피해 대출 창구의 모습. 한경DB
한 시중은행에 마련된 전세사기피해 대출 창구의 모습. 한경DB
중소기업 취업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세대출의 한도와 대상도 확대될 예정이다.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해당 대출의 대상과 한도 상향을 예고했다. 여기에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다시 한도를 2억원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하며 구체적인 상향 폭을 조율 중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버팀목전세자금대출 역시 최근 한도와 폭이 상향됐다. 여기에 지자체마다 청년을 대상으로 전세 보증금 대출이자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어 지원 대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대출 한도가 최근 늘어나면서 높아진 보증금에도 대처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며 “다만, 현장에서 청년이 자신이 쓸 수 있는 정책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계약 전 조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