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뉴  E-클래스./사진=벤츠코리아
더 뉴 E-클래스./사진=벤츠코리아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8년 연속 수입차 베스트셀링 모델에 오를 만큼 한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가 올해는 심상찮다. 올 초 8년 만에 신형 모델을 선보인 만큼 신차 효과까지 더해져 압도적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였지만 판매량이 좀처럼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클래스의 경쟁 차종이라 할 만한 BMW 5시리즈에 밀리는 추세다. 5시리즈는 지난해 출시됐지만 올해 들어서도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E클래스를 줄곧 앞서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E클래스는 지난달에는 렉서스의 ES에도 판매량이 뒤처지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9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에도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는 BMW의 몫이었다. BMW는 3월 한 달간 국내에서 6521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테슬라가 6025대로 BMW를 뒤쫓으면서 벤츠(4199대)는 3위로 내려앉았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BMW와 1·2위를 다퉈왔던 벤츠가 예상밖 고전을 하는 것은 '확실한 카드'인 베스트셀링모델 E클래스가 생각만큼 판매량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클래스는 지난달 505대 판매에 그쳤다. 전월 대비 판매량이 반토막(47.4% 감소) 났다. 2월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링 모델 순위 2위를 달리던 E클래스는 지난달 9위까지 추락했다. 같은 기간 5시리즈는 2241대 팔렸고 렉서스 ES까지 822대를 판매해 E클래스를 제쳤다.
렉서스 ES 300h./사진=렉서스
렉서스 ES 300h./사진=렉서스
올 들어 BMW와 벤츠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벤츠로선 독일 공장에서 생산된 E클래스 물량의 국내 입항이 늦어지고 있는 게 뼈아프다. 후티 반군 공격으로 홍해-수에즈 항로가 봉쇄되면서 차량을 실은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항로로 변경돼 입항 스케줄이 최대 2개월까지 늦춰진 게 치명타가 됐다.

벤츠 관계자는 "홍해 사태로 인해 아직 E클래스 물량이 충분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4월부터는 밀렸던 선박들 도착이 예정돼 있어 대기 수요가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클래스의 경쟁 차종으로 꼽히는 5시리즈에 이어 ES까지 판매가 늘면서 E클래스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렉서스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하이브리드 세단 ES 300h는 2012년 국내 출시 이후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꾸준히 인기를 누린 렉서스의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일본차 특유의 넓은 실내 공간과 트렁크, 강력한 연비 등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ES 300h가 BMW, 벤츠와 경쟁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가격이다. ES 300h는 6690만~7160만원으로 5시리즈(6880만~8870만원)나 E클래스(7390만~1억2300만원)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차량 인기에 힘입어 ES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긴 하지만 E클래스에 비해 파워트레인이 한정적이라 E클래스를 계속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E클래스 물량 입고 흐름이 원활해지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