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 불시착한 우주선 DDP…샤넬·구찌도 줄서는 명품 런웨이 됐다
‘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

동대문에 불시착한 우주선 DDP…샤넬·구찌도 줄서는 명품 런웨이 됐다
10년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노점상 1000여 개가 늘어선 풍물시장, 추억의 동대문운동장을 밀고 그 자리에 들어선 은회색의 울룩불룩한 건물은 낯설고 또 난해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이 건물 설계를 마지막으로 2016년 별세했다. 그의 유작에 서울 사람들이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정돈되지 않은 주변 거리와 부조화가 크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하지만 이 공간의 가치는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발견되고, 발굴됐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샤넬이다. 샤넬은 하디드의 열렬한 팬이다. 2008~2011년 홍콩, 도쿄, 뉴욕, 파리에서 하디드가 샤넬을 위해 만든 움직이는 전시장 ‘모바일 아트 샤넬 컨템포러리 컨테이너’를 운영했다. 그런 하디드가 서울에 지은 비슷한 콘셉트의 DDP는 샤넬에 완벽한 새 런웨이 장소였다.
칼 라거펠트가 연 ‘샤넬 크루즈 쇼’
칼 라거펠트가 연 ‘샤넬 크루즈 쇼’
2014년 3월 DDP 개장 후 반년 만에 ‘장소의 정신’ 쇼를 개최했고, 2015년 칼 라거펠트가 직접 나서 샤넬 크루즈 쇼를 열었다. 곡선의 공간을 100% 활용한 쇼장의 설계와 한복·한글을 이용한 디자인, 마치 연지곤지를 찍은 듯한 색점의 리듬감 있는 배치는 공간에 생기를 부여했다.

‘샤넬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이후 명품 브랜드가 줄줄이 탐내는 장소가 됐다. 디올의 ‘에스프리 디올’(2015), 패션계의 악동으로 꼽히는 ‘장 폴 고티에 전시회’(2016), 루이비통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2017), 반클리프아펠 ‘노아의 방주’(2018),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2022)’, 반클리프아펠 ‘시계 전시회’(2023), 펜디의 ‘서울 플래그십 오프닝’(2023) 등이 이어졌다. 구찌 아키타이프 전시회는 분홍색 전시장 입구와 구찌 핸드백 200개를 거울에 비춘 전시 공간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올해도 5월 까르띠에의 ‘시간의 결정’, 11월 피아제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이들이 꼽는 DDP의 매력은 볼수록 새로운 공간감에 있다. ‘곡선의 여왕’이라고 불린 하디드가 겨냥한 바로 그 감각이다. 4만5133장의 외벽 패널은 한 장 한 장의 곡면이 모두 다르다. 1층에서 걷다 보면 어느새 2층이 되고, 3층에서 걷다 보면 2층에 내려가 있는 식의 비정형성이 주는 낯선 자극은 흥미로운 탐험의 느낌을 유지하는 데 최적이다.

루이비통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은 서울 전시회 장소로 처음부터 DDP를 찍었고, 맥킨지는 시니어 파트너들의 모임(SPM 2023)을 섭외하며 “DDP에서 못 하면 서울에서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도시에서 두 번 이상 전시회를 하지 않겠다던 영화감독 팀 버튼은 “존경하는 하디드의 공간”이라며 DDP에서 두 번째 서울 전시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몽블랑, 오메가 같은 브랜드는 물론 페라리, BMW, 볼보, 포르쉐, 아우디 등 각국 자동차 회사에도 넉넉한 공간감과 미래 느낌이 가득한 DDP는 매력 만점 ‘톱픽’이다.

DDP에선 해마다 20~30여 건의 행사와 전시가 펼쳐진다. 이 중 절반가량은 유명 브랜드 관련 행사와 예술 전시다. 한국 브랜드의 세계 진출을 돕는 발판으로 자리매김한 ‘서울 패션위크’ ‘서울 뷰티위크’ 등이 가세했다. 지난해 DDP 가동률은 74%로 강남 코엑스와 비슷한 수준. 쇼와 쇼 사이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1년 내내 100% 차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 전시가 풀 부킹 상태”라고 했다.

올 하반기에는 누적 방문객 수가 1억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점상 '가스통 협박' 딛고
새해 카운트다운 명소로 탈바꿈한 DDP

"보상도 똑바로 안 해 주고, 이대로 나가라고 하면 확 가스통 터뜨려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쇼!"

지금은 샤넬과 루이비통, 새해 카운트다운을 논하는 명소가 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2008년까지만 해도 노점상 1000여곳이 들어선 '풍물시장'이었다.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시절의 동대문운동장 모습. /나무위키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시절의 동대문운동장 모습. /나무위키

80년 된 동대문운동장, 허물기도 쉽지 않았다

연배 있는 이들은 아직도 이곳을 ‘동대문운동장’으로 기억한다. 일제시대 때인 1925년 지어진 이 경기장은 축구 야구 달리기 등 다양한 목적의 경기와 행사에 활용됐다. 럭키금성(현 FC서울)이 경기를 한 적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80년 된 운동장의 안전성 문제가 커져 철거를 결정했고, 2003년 주 경기장이 폐쇄됐다.

경기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이 공간은 한동안 정체성을 잃고 주차장으로 쓰이는 데 그쳤다. 2002년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개발하면서 이 일대 노점상을 전부 동대문운동장에 몰아넣기로 했다. ‘동대문 풍물 벼룩시장’에 밀려 들어온 노점상은 1000곳을 훨씬 넘었다.

당시 서울시에서 이 문제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운동장은 물론이고 스탠드까지 전부 노점상 천막으로 들어찼다”며 “동대문 옆부터 국립극장까지 전부 노점이 뒤덮어 기존 상권까지 다 죽는 상황이 됐다”고 회고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 계획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경향신문
동대문운동장 철거 계획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경향신문
‘동대문에 디자인 명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된 것은 2006년이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한 ‘디자인플라자’ 조성 부지로 동대문운동장이 낙점됐다. 그러나 당시엔 “자본 중심 논리에 역사적 건축물을 부순다”거나 “역사적인 장소인 만큼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해서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새 공간에 대한 현상 설계 공모에서 영국 건축가 고(故)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이 2007년 당선됐다.
자하 하디드 건축가가 최초 서울시에 제안한 DDP 디자인 '환유의 풍경.
자하 하디드 건축가가 최초 서울시에 제안한 DDP 디자인 '환유의 풍경.

전 박원순 시장 때는 '주민영웅의 공간' 활용

그림은 그렸지만 이 그림을 실행하려면 당장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노점상들이 문제였다. 서울시에서 이 문제를 담당한 것이 방태원 전 동대문구청장 권한대행(당시 건설행정과장)이다. 방 전 권한대행은 "가스통을 한 두개가 아니라 잔뜩 쌓아놓고 불 붙이겠다고 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정말 말도 아니었다"고 했다. 설득하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상가 찾아가고 자녀 혼사에 찾아가고 술 마시고 하면서 순전히 마음으로 설득한 것"이라며 "돈으로 보상하지 않고 신설동에 멋진 자리를 만들어서 내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DDP 공사를 위해 노점상을 내보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철거를 앞두고 상인들이 반발하는 모습. / 한경DB
DDP 공사를 위해 노점상을 내보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철거를 앞두고 상인들이 반발하는 모습. / 한경DB
이 노점상들이 이전한 공간이 현재 신설동 풍물시장(2008년)이다. 이 때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노점상 외에 종각~동대문에 이르는 구간의 모든 노점상이 일제히 정비됐다. 방 전 권한대행은 "시에서 허가한 가판대를 만들고, 24시간 장사를 금지하고, 점용료를 내는 정책 등이 모두 이때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있던 이대동대문병원은 이대목동병원으로 통합 이전했고, 야구협회에서 동대문 야구장을 살려달라는 요청이 빗발친 결과 고척 돔구장이 신설됐다. 모두 동대문운동장의 DDP 개발이 낳은 ‘나비효과’다. 운동장 아래에 묻혀 있던 이간수문도 이때 발굴되어 복원됐다. 남산에서 내려오던 물길이 청계천으로 흘러가던 수문이다.
2011년 6월 DDP 공사현장의 모습. / 서울시 제공
2011년 6월 DDP 공사현장의 모습. / 서울시 제공
이후에도 DDP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두 번째 난관은 지자체장의 교체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무상급식 이슈로 갑자기 물러나게 되면서 후임으로 들어온 박원순 시장은 5000억원이라는 큰 돈을 써서 만든 DDP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를 진행 중인데 비용 지출을 줄이라고 지시해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박 시장은 2012년 '세계 디자인 메카'라는 비전 대신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을 내세워 DDP를 바꾸자고 했다.
DDP는 4만5000여장의 패널의 곡률이 모두 달라 공사 과정에서 난항이 많았다. 비용이 많이 든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2011년 DDP 공사 현장을 방문한 오세훈 시장(왼쪽 두 번째). /서울시 제공
DDP는 4만5000여장의 패널의 곡률이 모두 달라 공사 과정에서 난항이 많았다. 비용이 많이 든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2011년 DDP 공사 현장을 방문한 오세훈 시장(왼쪽 두 번째). /서울시 제공
이 시기 DDP는 1층에 도서관을 만들고, 청년 벤처기업과 주민영웅 등 시민 성공담을 담은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2층에는 소재체험센터를 만들어 동대문의 봉제업을 시민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했다. 3층에는 디자이너스룸으로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도록 했다. 물론 이 기간에도 샤넬의 패션쇼를 비롯해 각종 행사와 전시가 진행됐다. 그러나 그러한 전시를 제외하고 나면, 평소의 DDP가 시민들에게 미치는 인상은 세련된 외관과 소박한 내용물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 오세훈 시장이 2기 시장으로 다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오 시장은 DDP의 활력을 되찾는 문제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게 서울시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시장직을 떠난 시간 동안 공들인 DDP가 망가지는 것을 많이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서울시는 서울디자인재단은 물론 서울경제진흥원(SBA)까지 DDP 운영에 참여시켜 다양한 활용법을 모색했다.
2023년 말 새해 카운트다운을 앞둔 DDP에 펼쳐진 꽃무늬 콘셉트의 '서울라이트'.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2023년 말 새해 카운트다운을 앞둔 DDP에 펼쳐진 꽃무늬 콘셉트의 '서울라이트'.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작년 연말 새해 카운트다운을 포함한 서울콘 진행 등의 성과도 거뒀다. 서울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를 활용해 DDP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관광객의 눈길을 끌겠다는 계획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는 DDP를 중심으로 한 동대문 일대를 정비하면서 이곳에 그동안 부족하다는 지목을 받아 온 5성급 호텔 등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의 화려한 DDP에서는 보이지 않는 뒷이야기가 많은 공간”이라고 했다.

이상은 기자

사진=서울디자인재단·서울시·샤넬·구찌·루이비통·AP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