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을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울산에서 그랬다.

Part. 1 술 한 잔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초록의 대지를 한바탕 휩쓸고 가는 바람, 하늘은 대지에 닿을 듯 가깝고 농부가 구슬땀 흘려 가꾼 논에 윤기가 흘러 밥 한술 뜨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이 풍경을 보면 누구나 마음에 평온이 들어찰 것인즉, 이곳으로 기꺼이 걸음하게 한 복순도가를 풍경 끝에서 만난다.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막걸리 하면 옛것, 어른들이 좋아하는 술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다. 울산 울주군에 자리한 복순도가는 가히 그 인식을 바꾼 대표적인 양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술 빚는 공간을 넘어 농업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미학적인 건축물, 천연 탄산이 마치 샴페인처럼 터지는 뜻밖의 우리 술로 복순도가는 도시와 세대를 연결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 이효태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 이효태
건축을 전공한 김민규 대표가 직접 세운 도가는 기다란 장방형 구조에 먹색에 가까운 외벽이 인상적이다. 빛에 따라 오묘하게 색이 달라지는 이 먹색은 볏집을 태운 재에서 왔다.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볏집을 태우던 의식을 건물에 담은 것이다. 검은 벽을 훑으면 그 안에 까슬까슬한 촉감의 새끼줄이 섞인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이는 무슨 이치일까? 발효건축의 개념을 지닌 도가는 하나의 유기물로 자연과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무르익는다. 그 속에서는 쌀, 물, 누룩이 유기물에 순응하며 익어가는 소리가 톡톡 들려온다. 처마 끝에 달린 빗방울이 흙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고, 코끝에 닿는 술 냄새는 저절로 취하고 싶게 한다.

팡팡 터지는 천연 탄산은 발효건축이 만드는 것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복순도가의 모든 제품은 전통 옹기에서 오랜 발효시간을 거친다. 대표적인 제품인 ‘복순도가 손막걸리’의 터질 듯한 천연 탄산은 이 시간 덕분에 만들어지는 것. 도가 옆에는 방문객을 위한 ‘주막’이 마련되어 있다. 시그니처인 복순도가 손막걸리, 홍국쌀로 빚어 색이 어여쁜 빨간쌀 막걸리, 탄산 없이 걸쭉한 맛의 탁주, 한국의 포트와인으로 불리는 과하주까지 취향껏 시음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도 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 / 사진=이효태
Part. 2 예술 한 점
지난 2022년 울산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서 울산시립미술관이 개관했다. 미디어아트 전용관인 ‘XR랩(eXtended Reality Lab)’은 지역에 기반을 둔 미술관이 무엇을 말하고 추구해야 하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울산 중구 울산시립미술관 / 사진=이효태
울산 중구 울산시립미술관 / 사진=이효태
XR랩 두 번째 전시인 <정연두: 오감도(烏瞰圖)>전은 1년간의 작업을 거쳐 울산의 산업과 자연, 생태를 담았다. 도심의 희로애락 같은 장면들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최신 디지털 기술로 혼합되어 사면을 감싸고, 관람객은 풍경에 압도되는 생생한 경험을 한다.
정연두 오감도(烏瞰圖)전
정연두 오감도(烏瞰圖)전
영상은 울산의 도심과 들녘을 가로지르는 까마귀 떼의 군무, 산업현장으로 출근하는 오토바이들의 행렬, 죽음의 강에서 국가정원으로 승격된 울산 태화강을 비추며, 다시금 불 꺼진 시장 골목에서 노래하는 가수 안코드를 찾아간다. 맨발에 기타를 멘 그가 노래한다.

“빛은 언제든지, 어디에나 있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삶에서 놓쳐버린 수많은 부제가 떠올랐다. 움켜쥐거나 가버리게 놓아두는 것 또한 내 몫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