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아파트의 승강기가 수리를 위해 멈춘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노후 아파트의 승강기가 수리를 위해 멈춘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우리집은 타지도 않는데 왜 돈을 내나요.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돈 내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연결도 안된다고요. 저는 이웃집 놀러간 적도 없어요."

수도권의 노후 아파트 1층에 사는 박모씨는 최근 엘리베이터 교체 안내문을 받고 뒷목을 잡았습니다.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낡은 엘리베이터를 교체할 예정인데, 충당금이 부족해 16개월 동안 가구당 매월 8만원을 추가로 걷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공동주택관리법 제30조에 규정되어 있는 주요시설로 분류됩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을 활용해 기계장치와 제어반, 조속기, 도어개폐장치 등은 15년마다, 와이어로프, 쉬브는 5년마다 교체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유지보수를 하더라도 종종 고장 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낡은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쓰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지 않거나, 작동을 멈춰 고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예방 정비가 한계에 달했다면,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기에 엘리베이터를 아예 신형으로 교체하는 아파트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낡은 엘리베이터 교체해야 하는데…"1층도 돈 내라"

하지만 아파트 1층에 거주하는 박씨는 엘리베이터 교체에 자신이 돈까지 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되지도 않은 탓에 사용할 일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박씨의 항의에 관리사무소 측은 "엘리베이터를 바꾸면 아파트 가치가 오르니 1층도 혜택을 본다"며 "층수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비용을 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박씨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 1층 집값이 오른다는 소리가 말이 되느냐"며 "그간 낸 장기수선충당금까지 합치면 수백만원을 갈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아파트 관리비 항목에서 1층 세대들은 엘리레베이터 이용료를 내지 않습니다. 관리차원에서 이용하지 않다는 걸 인지라고 있는 셈이죠.
한 아파트에 승강기 교체공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한 아파트에 승강기 교체공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엘리베이터를 쓸 일이 없는 1층과 2층 주민은 교체 비용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 설치비를 둘러싼 갈등은 법정 소송으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소송 내용이나 승패는 갈렸는데요.

2018년 경기 양평군 아파트 입주자대표회가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1층 입주민에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가 있습니다. 고층 주민 분담금의 40%만 내라는 아파트 측의 요구를 1층 주민이 거부했는데, 분담금을 내라는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2020년에는 서울 양천구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을 균등하게 부과한 입주자대표회와 관리사무소를 상대로 1층 입주민이 소송을 걸어 이겼습니다. 이용 빈도가 적은 1·2층 주민에게 고층 주민과 동일한 분담금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지난해에도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을 두고 1·2층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부는 1층 주민들도 공용부분인 승강기를 공유한다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의 판례를 종합하면 1·2층 주민도 엘리베이터 교체비를 분담해야 하되, 고층 주민과 동일하게 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2층 주민이 교체비를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국토부 "1·2층도 똑같이 내야"…저층 주민들 "버튼 눌리지도 않아"

갈등이 계속되자 국토교통부는 "장기수선충당금은 전체 소유자에게 주택 공급면적 기준으로 산정해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고 저층 세대라고 하더라도 장기수선충당금을 변제하거나 변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1·2층 주민도 고층 주민과 똑같은 비용을 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유권해석에 반발하는 1·2층 주민이 적지 않습니다. 노후 아파트에 사는 2층 주민은 "2층에서는 엘리베이터 버튼이 눌리지도 않는다"며 "엘리베이터 사용을 못 하니 항상 계단을 이용하는데, 비용만 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층에 산다는 다른 주민도 "놀이터와 같은 공용부분이니 어느 정도 관리비를 부담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면서도 "교체와 같은 큰 공사는 수익자부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부당하다는 1·2층 주민들의 의견이 다른 입주민들의 공감을 사긴 어려워 보입니다. 특정 가구가 공용부분의 정비 부담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공동주택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비용을 차등화 하자니 가구마다 엘리베이터 사용 빈도를 따져야 하나 막막하기만 합니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당분간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