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도심 속 정원과 녹색 지역공동체
한성대 남쪽, 성북구와 종로구의 경계가 맞닿은 곳에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가 관리하는 낙산공원이 있다. 아파트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심형 휴식 공간으로, 학생들과 지역 주민이 오가면서 공원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낙산공원 너머로 장수마을과 한양도성을 따라 혜화동과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래된 풍경과 마주하며 지역과 지역을 잇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삭막한 도심 한복판에서 푸른 숲이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감은 일상에 지친 도시민의 마음을 치유하고 힘을 북돋는다. 정원문화가 활성화된 영국에는 3500개 이상의 개방된 민간 정원이 있다고 한다. 정원을 방문해 가드닝을 하고, 차를 마시고, 식물을 구경하는 것이 일상인 나라가 영국이다. 또 정원을 가꾸는 활동은 ‘정원 치유’로 불리며 신체적·정신적 치유 효과까지 입증됐다고 한다. 몸을 움직여 정원을 만들어 나가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의미다.

이웃과 함께 정원을 가꿔 나가는 과정에서 유대를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외로움과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은 넓은 공간이 아니어도 생활권 곳곳 자투리땅에 조성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국민의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 도시의 정원을 가꿔나갈 수 있다면 우울증 치유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역의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공원과 정원 같은 도심 녹색 인프라를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철근과 시멘트,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선 정원 같은 녹색 인프라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늘고 있으나 이를 충족할 만한 공간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도시 곳곳의 토지도 그 소유권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단체, 개인으로 촘촘하게 나뉘어 있어 일정 규모 이상의 공원이나 정원을 조성하기도 어렵다. 중앙정부가 나서 지자체 및 민간과 함께 공동으로 정원을 조성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은 이미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공동체 정원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자체, 법인·단체, 지역주민 등과 함께 도심 속 공간을 이용해 정원을 가꾸도록 한다면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새로운 공간과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앞둔 이 시점에 도심 속 정원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녹색 인프라이자 중요한 문화 공간이 될 것이다. 함께 정원을 만들어 나가면서 정원을 중심으로 건강한 녹색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