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적선과 황적선
2001년쯤이었던 것 같다. 당대 최고의 거장이던 황병기 명인의 음악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의 공연 진행 작가를 맡았다. 황병기 선생님의 작품을 예우(藝友)들이 재구성한 ‘서곡’과 타악 연주가이자 서예가인 고(故) 김대환 명인의 서예 퍼포먼스가 함께 어우러지며 공연이 개막했다. 김 명인은 객석을 바라보며 글씨를 쓰고, 이를 객석에서 똑바로 읽을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그런데 내가 쓴 원고에 따라 무대를 중계방송하듯 유창하게 진행하던 진행자의 설명이 극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끝부분에서 약간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휘호인 낙엽귀근(落葉歸根: 낙엽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을 ‘낙엽귀조’로 보고 원고를 작성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진행자는 당당하게 힘주어 그날의 휘호를 낙엽귀조로 읽었다. 아뿔싸! 그때 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우선 나 때문에 진행자가 실수한 것으로 오해받게 된 것, 무섭게 생긴 연출가 오대환 선생님으로부터 불호령을 받을 일, 그리고 그 무엇보다 대가 중의 대가인 황 선생님의 공연을 망친 것 같아 좌불안석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황 선생님께 잘못을 빌었다.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황 선생님은 딱 한 말씀만 하셨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무려면 어때?” 황 선생님의 말씀에 더 몸 둘 바를 몰랐다. 역시 차원이 다른 분이었다. 사건 이후 황 선생님은 나를 오히려 더 많이 챙겨주고 정말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가나아트센터 실외 무대에 오른 황 선생님은 명주 두루마기를 입고 사뿐히 걸어 나와 연주한 뒤 나비처럼 퇴장했는데, 그 모습이 신선처럼 느껴졌다.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던 황 선생님이었기에 나도 글 한 줄을 남겼다. “선생님, 정말 신선 같았어요.” 그러자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라오. 이태백처럼 하늘에서 귀양 온 적선(謫仙). 이태백을 ‘이적선’이라고 하니까, 나는 ‘황적선’인가?”

지난 1월 31일은 선생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지 6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주신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던지던 농담이 그립다. “유은선의 분위기는 호박죽처럼 참 친근해”라고 칭찬해주던 선생님, “난 항상 깨어 있으니 괜찮다”고 어느 시간에도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선생님, “유은선이 섭외하면 1분만 공연해도 괜찮고, 아무 때나 연주 그만하라고 해도 들을 거야”라며 무한 신뢰를 보여준 선생님. 돌아가신 뒤 사모님을 통해 내가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걱정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마운 마음에 몇 번이고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서도 ‘황적선’의 무한 신뢰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