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항암제 '렉라자'의 임상연구책임자(PI)로 잘 알려진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이 설립한 신약벤처 다안바이오테라퓨틱스가 2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초기 투자를 받았다.다안바이오테라퓨틱스는 25일 23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에는 솔라스타벤처스(아주IB투자),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타임폴리오지신은영, 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벤처스, 데일리파트너스, 케이비인베스트먼트,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흥국증권, 신한캐피탈, 퓨처플레이가 참여했다. 회사는 이번 투자금을 선도 후보물질(파이프라인) ‘DN-101’의 전임상 및 임상개발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다안바이오테라퓨틱스는 폐암 치료에 대한 미충족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조 센터장이 2020년 설립한 회사다. 면역세포 중 한 종류인 T세포의 수용체(TCR)를 이용한 세포치료제 및 항체치료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EGFR 돌연변이 폐암 치료가 목표다. 회사 관계자는 “선도 파이프라인 DN-101은 기존 폐암 치료제인 EGFR-TKI 표적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환자를 위한 3차 치료법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면역관문저해제와의 병용치료 등을 통해 1차 치료요법으로의 확장도 전략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가 예상하는 임상 진입 시점은 2026년이다.다안바이오테라퓨틱스는 2022년 50억원의 시즈 투자를 받았으며, 이번 시리즈A 투자로 누적투자금액은 280억원으로 늘어났다.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폐암 신약 ‘렉라자’가 복제약을 주로 생산해 온 국내 제약사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겁니다.”조병철 연세대 의대 암병원 폐암센터장은 31일 “유한양행 렉라자가 폐암 1차 치료제로 쓰이게 되면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유럽 최대 암학회 메인홀에서 발표혁신 신약은 제약사 연구개발(R&D) 역량만으론 탄생하기 어렵다. 임상시험 단계마다 물질을 잘 평가하고 적합한 환자군을 찾는 의사의 임상 역량이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렉라자는 개발 과정에서 이런 두 축이 조화를 잘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센터장이 한 축을 이끌었기 때문이다.조 센터장팀은 폐암 신약 임상시험만 132건 참여하고 있다. 이 중 85%가 다국가 임상시험이다. 그가 10월 23일 유럽종양학회(ESMO) 메인홀에서 렉라자와 얀센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도 이런 이력 덕분이다.ESMO는 170개국 암 연구자 3만 명이 참석하는 세계 3대 암학회다. 얀센이 주도한 이번 연구엔 미국 독일 등의 의료진이 대거 참여했다. 그는 이들을 대표해 연단에 올랐다.조 센터장은 “그동안 개발된 표적·면역항암제 덕에 폐암 환자 5년 생존율이 5년 전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 올라왔다”면서도 “한국에서 개발된 약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이 세계 폐암 환자를 위한 1차 치료제가 될 계기가 마련됐다”며 “렉라자가 ‘국내 첫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신약 경쟁으로 환자 부담 줄어들 것”ESMO에서 조 센터장은 렉라자와 리브리반트를 투여한 폐암 환자가 기존 치료제인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만 투여한 환자보다 암이 진행되거나 사망할 위험이 30% 정도 낮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폐암 중 특정 돌연변이(EGFR)가 있는 환자를 위한 3세대 표적항암제다. 이 시장은 타그리소가 사실상 독점해왔다.조 센터장은 “이번 임상에선 뇌 전이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환자에게 자기공명영상(MRI)을 활용해 연속 뇌 촬영을 했다”며 “이전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연구에서 시행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공개된 데이터를 두고 일각에서 ‘예상보다 낮은 효과’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이는 정교한 임상 평가법 탓에 생긴 일종의 착시라는 취지다. 추후 공개될 전체 생존 기간에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가 충분히 효과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렉라자와 리브리반트는 내년께 미국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센터장은 치료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약값이 내려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타그리소는 대다수 나라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평균 18개월 치료 기간 약값만 매달 600만원가량 든다”고 했다.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70여 년 전 세포를 무단 채취당해 자신도 모르게 인류 의학사에 기여하게 된 미국 흑인 여성이 마침내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영국 BBC방송은 1일(현지시간) 세포의 주인공인 헨리에타 랙스(사진)의 유족과 매사추세츠주 기반 바이오 기업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이 전날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보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족 측 변호사 벤 크럼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측 모두 만족한 합의였다고 밝혔다.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던 랙스(당시 31세)는 1951년 복부 통증과 이상 출혈로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았다가 세포를 도둑맞았다. 당시 산부인과 의사들은 랙스의 자궁경부에서 커다란 종양을 발견한 뒤 환자에게 알리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암세포 샘플을 연구실로 보냈다. 랙스의 세포는 여타 세포와 달리 실험실에서 무한 증식했고 죽지 않는 ‘불멸의 세포’로 불리며 전 세계 연구실에 퍼져나갔다. 이후 이 세포는 ‘헬라(HeLa)’라는 이름이 붙어 소아마비 백신 개발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암, 불임 연구 등에 활용돼 수많은 업적으로 이어졌다.랙스의 유족은 그의 사망 수십 년 뒤에야 진상을 알게 됐고, 서모피셔가 랙스의 세포로 부당하게 이익을 챙겼다며 2021년 소송을 제기했다. 서모피셔는 소멸시효를 들어 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유족은 세포가 여전히 복제되고 있어 소멸시효를 넘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랙스의 유전물질을 재생산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때마다 소멸시효가 연장된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었다.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랙스가 남긴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열어 그가 겪은 착취에 대해 공개적으로 유감을 밝히기도 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당시 “랙스는 착취당했다”며 “신체가 과학에 남용된 수많은 유색인종 여성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