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철 연세대 의대 암병원 폐암센터장이 지난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 메인홀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제공
조병철 연세대 의대 암병원 폐암센터장이 지난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 메인홀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제공
“폐암 신약 ‘렉라자’가 복제약을 주로 생산해 온 국내 제약사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겁니다.”

조병철 연세대 의대 암병원 폐암센터장은 31일 “유한양행 렉라자가 폐암 1차 치료제로 쓰이게 되면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유럽 최대 암학회 메인홀에서 발표

혁신 신약은 제약사 연구개발(R&D) 역량만으론 탄생하기 어렵다. 임상시험 단계마다 물질을 잘 평가하고 적합한 환자군을 찾는 의사의 임상 역량이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렉라자는 개발 과정에서 이런 두 축이 조화를 잘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센터장이 한 축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팀은 폐암 신약 임상시험만 132건 참여하고 있다. 이 중 85%가 다국가 임상시험이다. 그가 10월 23일 유럽종양학회(ESMO) 메인홀에서 렉라자와 얀센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도 이런 이력 덕분이다.

ESMO는 170개국 암 연구자 3만 명이 참석하는 세계 3대 암학회다. 얀센이 주도한 이번 연구엔 미국 독일 등의 의료진이 대거 참여했다. 그는 이들을 대표해 연단에 올랐다.

조 센터장은 “그동안 개발된 표적·면역항암제 덕에 폐암 환자 5년 생존율이 5년 전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 올라왔다”면서도 “한국에서 개발된 약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이 세계 폐암 환자를 위한 1차 치료제가 될 계기가 마련됐다”며 “렉라자가 ‘국내 첫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신약 경쟁으로 환자 부담 줄어들 것”

ESMO에서 조 센터장은 렉라자와 리브리반트를 투여한 폐암 환자가 기존 치료제인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만 투여한 환자보다 암이 진행되거나 사망할 위험이 30% 정도 낮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폐암 중 특정 돌연변이(EGFR)가 있는 환자를 위한 3세대 표적항암제다. 이 시장은 타그리소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조 센터장은 “이번 임상에선 뇌 전이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환자에게 자기공명영상(MRI)을 활용해 연속 뇌 촬영을 했다”며 “이전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연구에서 시행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공개된 데이터를 두고 일각에서 ‘예상보다 낮은 효과’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이는 정교한 임상 평가법 탓에 생긴 일종의 착시라는 취지다. 추후 공개될 전체 생존 기간에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가 충분히 효과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렉라자와 리브리반트는 내년께 미국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센터장은 치료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약값이 내려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타그리소는 대다수 나라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평균 18개월 치료 기간 약값만 매달 600만원가량 든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