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인구감소의 역습…'물류 2024년 문제'⑨에서 계속. 전편에서는 일본 여행의 인기 코스 돈키호테의 미끼상품이 싼 이유를 살펴봤다. 일본 유통업계가 '물류 2024년 문제' 해소를 위해 상거래 관행을 바꾸면서 돈키호테가 미끼상품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 상황 또한 소개했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물류 2024년 문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트럭 운전기사 부족 문제다. 일본은 전체 물류(총 47억2700만t)의 92%를 트럭에 의존한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물류 2024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기업은 '모빌리티 시프트(수송 대전환)' 즉, 트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물류 2024년 문제 1~8'에서는 물류 인프라와 기존 물류시장의 판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정책에서부터 운전기사 한 명이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화물을 실어나르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물류 2024년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제일 간단한 해결책은 운전기사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일본 최대 기업 도요타자동차는 1차 협력회사 20~30곳이 부품을 나르는 물류회사에 지급하는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오는 4월부터 '일본판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도입으로 잔업시간이 짧아지면 운전기사의 실수령액도 줄어든다. 운전기사의 연간 수입을 유지함으로써 부품 수송을 담당하는 인력의 이탈을 방지하겠다는 예방책이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에서 부족한 건 트럭 운전기사 뿐만이 아니다. 2040년이면 일본은 일손이 1100만명 부족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모든 업종이 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다른 업종보다 근무시간은 20% 더 긴데 연 수입은 28만엔(약 244만원) 적은 트럭 운송 업종이 쟁탈전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가능할 지 몰라도 대부분의 일본 기업은 임금 인상 만으로 인력난을 해결하기란 버겁다.

있는 형편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1명의 운전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크기의 트럭으로 더 많은 화물을 나르는 것이다. 일본 물류업계의 현실은 반대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국토교통성의 '전국 화물 순물동 조사'에 따르면 공장과 물류창고에서 한 번 출하할 때의 화물 무게는 1990년 2.43t에서 2021년 0.7t으로 3분의 1 토막났다.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면서 소량의 화물을 더 자주 실어나르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제조방식도 '빈 트럭'을 늘리는 이유다. ‘도요타 생산 시스템(TPS)’으로 잘 알려진 ‘적기 생산(Just-in-time)’ 방식이 대표적이다. 적기 생산은 필요한 부품을 그때그때 공급받아 재고를 극단적으로 낮추는 방식이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일본의 여러 기업들이 적기 생산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오늘날에는 일본 제조업의 주특기가 됐다. 하지만 원재료를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받는 적기 생산은 소량의 화물을 여러 차례 실어나르는 다빈도 소량배송이 필수적이다. 일본 화물 트럭의 적재효율이 낮은 이유다. 2010년 이후 트럭의 적재효율은 40%를 밑돌고 있다.
'맥주+라면' 한 트럭에 실었더니…日회사의 '파격 아이디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트럭에 더 많은 짐을 싣기 위해 기업이 내놓은 대책이 '밀크런', 우유배달 방식이다. 트럭 한 대가 우유 배달하듯이 여러 기업을 돌면서 화물을 한데 모아서 운송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산업이 밀크런을 도입하면 적기 생산 방식보다 필요한 운전기사를 12%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쓰비시케미칼그룹, 오노약품공업, 시오노기제약 등은 2023년 1월 제약업계 최초로 공동 운송을 시작했다.

전혀 다른 업종의 기업이 공동 운송으로 적재율을 높이는 방법도 등장했다. 그동안 맥주 회사들은 맥주를 트럭 가득 실어 보내고 싶어도 중량 제한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거운 맥주와 가벼운 라면을 함께 실으면 어떨까.

닛세이식품과 삿포로그룹이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켰다. 두 회사는 2022년 3월부터 시즈오카~오사카 구간의 제품 수송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시즈오카현 야키즈시에 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력 상품인 맥주와 라면을 함께 실음으로써 화물칸을 꽉 채울 수 있게 됐고, 필요한 트럭을 20% 줄일 수 있었다. 인구감소의 역습…'물류 2024년 문제'⑪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