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 A사는 충남 아산에서 주상복합(300여 가구) 인허가를 받아 놓았지만, 최근 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중단 여파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서다. A사 대표는 “유동성 경색이 풀릴 기미가 없어 토지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사업을 접고 쉬는 게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F발 유동성 위기로 자금 조달이 막힌 디벨로퍼 업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개시 무렵 정부가 내놓은 개선책(1·10 부동산 대책)에도 유동성 경색과 공사비용 증가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한 증권사 PF 담당 임원은 “수영장에 물이 빠져 수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비유할 정도다.

디벨로퍼 중에서도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도시형생활주택 등 이른바 수익형 부동산(투자상품)을 개발하는 곳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해서다. 개발사업은 통상 부지 매입 계약과 함께 브리지론(사업 초기 단기 차입금)을 받아 땅을 매입하고 인허가를 받은 뒤 본PF를 일으켜 나머지 토지비와 공사비 일부를 조달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사업 태반이 부지 매입 후 본PF로 전환하지 못하고 연 10% 안팎의 브리지론 이자만 내면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공사비가 크게 증가해 조건에 맞는 시공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충청도에서 개발 사업을 하는 한 디벨로퍼 관계자는 “10대 건설사 중 한 곳과 시공계약을 맺으면서 3.3㎡당 공사비가 2021년 405만원에서 지난해 중반 575만원으로 늘었다”며 “최근 서울 등 수도권에선 공사비가 700만원 선까지 뛰면서 시공사 찾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어렵게 공사를 진행했다 하더라도 미분양이 발목을 잡는다. 서울 강남구에서 100가구 규모의 도시형생활주택을 공급하는 B사는 최근 준공했지만 공매로 넘어갈 뻔한 위기를 맞았다. 분양률이 20% 내외로 저조해 본PF 원리금과 공사비를 합쳐 약 2200억원을 갚지 못해서다. 우선 급한 대로 PF 대출 만기를 6개월 연장했다. B사 대표는 “비아파트 규제를 푼다고 했지만 수도권에서는 해당하는 사업이 적다”고 지적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