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 전경. 사진=한경DB
공사현장 전경. 사진=한경DB
"오랜기간 현장에 몸 담아왔던 베테랑 작업자들이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지난해 중대재해로 도마에 올랐던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건설이라는 산업은 현장에 의존도가 높습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로 건설사들은 숙제가 생겼는데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도록 한 법안입니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목표로 2020년 1월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보다 처벌 수위를 높여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가운데 사망자가 1명 이상 나오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발생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나온 경우를 말합니다.

본사는 현장의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습니다. 다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발생합니다.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이 가운데 하나는 베테랑 작업자들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베테랑 작업자들은 현장 메뉴얼보단 그간 일을 하면서 체득한 작업 방식을 따른다는 겁니다. '그동안 했던대로', '이렇게해도 문제가 없었다'는 식인 거죠.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건축현장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건축현장 모습. 사진=한경DB
그렇다보니 현장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베테랑 작업자들이 더 골칫거리라고 합니다.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베테랑 작업자들은 자신들이 고수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기 마련"이라면서 "좋게 보면 노하우지만 안 좋게 보면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퇴근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점심시간 등을 틈타 '임의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임의작업을 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귀띔했습니다.

B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일부에 한정되겠지만 이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면서 "현장에서 안전모를 쓰지 않는 등 사소한 것부터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엔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들도 변수입니다. 우리나라 청년층은 현장직을 기피한 지 오래입니다. 한국인 직원들이 채우지 못한 부분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우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시 유입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적이 다르다보니 '언어의 장벽'에 가로 막힙니다.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앱(응용프로그램) 등을 통해 작업 지시서를 번역해 제공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원활하지 못한 소통은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C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에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말이 잘 통해던 조선족 노동자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동남아지역 노동자들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한국어가 가능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임금을 더 받는 등 더 알아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장에서의 사고는 숙련공들의 단독 행동, 외국인 노동자와의 소통의 어려움 등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론 노동자들의 '안전 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이 사고를 키우는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입니다. 조금 더 빠른 길, 조금 더 쉬운 길만 찾으면서 '안전불감증'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D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있겠지만 국내 대형 건설사 현장은 대체로 제도적이나 장치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을 만큼 뒷받침됐다"면서 "문제는 노동자들의 '안전 의식'이다. 사측에선 '안전'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발로 뛰는 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면 사고가 발생한다. 안전사고는 어느 한 쪽만 잘해선 막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오는 27일부터 올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됩니다. 아무리 작은 건설현장이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시간을 더 줘야 한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여야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산재예방 예산 2조원을 확보해야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이는 무리한 요구”라면서 거절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