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기 전에, 산 다음에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 [흥청망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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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보신 적 있나요? 아니, 아파트를 이렇게 딱 붙여서 지어도 되는 걸까요? 네, 됩니다. 생각보다 이런 곳이 제법 있어요. 세상엔 3가지 종류의 땅이 있습니다. 노란색 땅, 빨간색 땅, 파란색 땅입니다. 지도 앱에서 지적도를 선택하면 이런 컬러링북을 볼 수 있죠. 노란색은 주거지, 빨간색은 상업지입니다. 파란색은 공업지인데 그렇게 많진 않고 우리가 주로 보는 건 노란색과 빨간색입니다. 만약 놀부가 똑같은 돈을 들여서 집을 짓는다면 어떤 땅에 지어야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정답은 빨간색 상업지입니다. 건폐율과 용적률 때문에 그런데요.
여기서 건폐율은 놀부 땅 면적에서 건물의 면적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입니다. 그러니까 땅이 100㎡이고 건물이 50㎡라면 그 건물이 1층이든 2층이든 건폐율은 50%가 되는 거예요. 근데 용적률은 그 건물의 층별 면적을 다 더합니다. 연면적이죠. 2층짜리라면 50㎡+50㎡=100㎡죠. 땅도 100㎡이고 연면적도 100㎡니까 용적률은 100%가 나옵니다.결국 건폐율과 용적률이 그 땅에 짓는 건물의 밀도를 결정하는 숫자예요. 표를 볼까요. 상업지의 건폐율, 용적률은 주거지완 비교도 안 됩니다. 놀부가 갖고 있는 땅에서 건폐율 최대한 꽉꽉 채우고 용적률도 최대로 해서 건물 올리면 어마어마하게 남겠죠. 그런데 놀부만 그 생각을 할까요. 놀부가 주상복합을 지었더니 바로 옆에 빨간 땅을 갖고있던 흥부도 건폐율 꽉꽉, 용적률 빵빵하게 채워서 오피스텔을 한 채 올립니다. 지도로 보면 이렇게 흥부와 놀부의 땅은 그 필지의 면적 대부분이 건물로 채워져 있어요.
실물이 바로 처음 보셨던 사진입니다. 만약 주거지였다면 그래도 두 건물 사이를 어느 정도는 띄어야 합니다. 하지만 상업지는 그런 게 없습니다. 옆 건물 일조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냥 내 땅의 건폐율이 허락하는 만큼 건물로 꽉 채워서 짓는 것이죠. 부산의 이 전설 같은 아파트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탄생했습니다. 참고로 좌우가 서로 다른 단지입니다. 한 단지 아니에요. 상업지와 상업지가 마주볼 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주거지와 상업지가 가까이 있어도 문제가 됩니다. 재개발구역을 지정할 땐 보통 주거지와 상업지를 섞지 않고 따로따로 하는데요. 분명히 우리 구역 재개발 끝내고 입주했을 땐 전망이 탁 트였단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앞에서 뭘 뚝딱뚝딱 하더니 갑자기 이렇게 됩니다. 낡은 상가들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재개발을 한 거예요. 우리집 앞에다 말이죠. 지도의 154번지 땅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상업지는 건폐율, 용적률이 어떻다고 했나요. 주거지완 비교도 안 되게 높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꽉꽉 채운 건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새 아파트 입주했을 때 '우리 아파트 시야가 뻥 뚫렸네, 근처엔 낮은 상가만 있잖아'라고 안심해선 안 됩니다. 아니 그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하나로 묶어서 개발하면 안 될까요? 그럼 깔끔하긴 하죠. 문제는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요. 내가 상업지의 건물주, 혹은 세입자 상인이라고 생각해보자고요. "한 달에 여기서 버는 돈이 얼마인데 공사하는 동안 영업 못 하는 건 네가 보상해줄 거야?". 이렇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재개발 아파트는 대로변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간 경우가 많아요. 여기 빨간색 상업지만 문제가 아니라 큰길쪽 노란색 주거지도 전부 조그마한 가게입니다. 상가를 아예 피하고 안쪽만 재개발을 하는 거죠. 물론 같이 잘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재건축의 경우엔 이렇게 단지내 상가와 하나의 지번으로 묶여 있는 곳들 흔하게 보셨죠. 운명의 공동체란 얘기입니다. 심지어 그 상가가 크다면 재건축까지 가는 길이 험난한 구조이긴 합니다. 그래서 아예 단지에서 상가를 오려낸 곳도 있어요. 여기 보면 아파트는 1282번지인데 가운데 선 나눠진 건물만 1283번지죠. 제척한다고 표현하는데, 토지분할로 상가가 떨어져나간 자리입니다. 옆에 있는 게 개포시영재건축 '개포래미안포레스트'이고 바로 앞은 개포시영중심상가재건축 '개포자이르네'예요. 아파트와 상가가 분리재건축을 한 사례죠 원래 상가를 떼내냐 마냐로 많이 싸웁니다. 여기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 옛날 과천7-1단지를 재건축할 때도 옥신각신했는데, 상가에서 어떻게 나왔냐면 "너희가 우리를 빼고 재건축하면 여기는 장례식장이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죠. 최종적으로는 잘 합의가 돼서 재건축을 마쳤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집 앞에 느닷없이 뭐가 생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 환경을 잘 보자는 겁니다. 주변에 남은 땅이 어떤 성격이냐, 이게 중요하니까요.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촬영 이재형·조희재·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조희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