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에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토목 사업도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더불어민주당이 제도 개편에 나섰다.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 소멸 대응 등 정책적 의미가 크다면 경제성과 상관없이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막는 예타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예타 제도가 재정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자신들의 권한을 남용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며 제도 개편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은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자체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예타를 통해 경제성 분석을 하도록 돼 있다. 예산 낭비를 막아 한정된 재정의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홍 원내대표는 “경제사업과 비(非)경제사업의 예타 제도 운영이 달라야 하고 수도권·비수도권도 적용 기준이 달라야 한다”며 “개선안을 만들어 정부·여당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예타제도 개편을 꺼내든 배경에는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달빛(대구~광주)철도 특별법이 있다. 이 사업 규모가 9조원에 이르지만 예타 없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포퓰리즘 논란이 일었다. 기재부는 “신속 예타라도 거쳐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법안 처리에 반대했다. 이와 관련, 예타 면제 대상을 대폭 확대해 기재부가 개입할 여지를 줄이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예타 제도 개편으로 예타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될 것을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2019년 예타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비수도권은 지역균형발전 평가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경제성 평가 비중은 축소했다. 경제성이 낮더라도 정책적으로 필요가 있다면 우대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홍 원내대표가 이날 주장한 것과 비슷한 방향이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경제성을 등한시한 채 균형발전만 강조하면 추후 엄청난 유지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타 수행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경제성 평가 외에 지역균형발전·정책성 평가 장치가 있다”며 “민주당이 포퓰리즘을 남발하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재영/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