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금지한 금융당국의 방침을 두고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대통령실까지 수습에 나선 것은 그만큼 증권업계와 투자자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반(反)시장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은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거래 금지’라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법 개정 필요성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상황 파악 분주했던 대통령실국내 투자자들이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2일. 대통령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용산 대통령실로 호출해 관련 긴급 현안 보고를 받았다. 사전에 약속된 현안 보고 형식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위원장은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당장은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영향을 고려해 폭넓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대통령실 의견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대통령실이 이번 논란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금융산업 육성’이라는 윤석열 정부 기조가 삐걱대는 사례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에서 허용한 투자를 한국에서 가로막은 것은 금융 선진국 지향과는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업계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금융의 선진화와 국제화, 경쟁력 강화가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가상자산시장만큼은 규제 걱정이 없도록 네거티브 규제(사후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 비중이 높은 ‘서학개미’와 가상자산 투자자의 반발이 커지는 것도 고심거리라는 후문이다.정통 경제부처 관료들은 가상자산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교수 시절 “가상자산은 그 자체가 공식적인 화폐로서의 지위와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자산으로서의 성격은 가질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폭넓은 검토 나선다지만…대통령실까지 관심을 보이자 금융당국도 법적 타당성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11일 “국내 증권사가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다소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증권사들은 2021년부터 중개해 온 캐나다·독일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중단했다.논란이 커진 이튿날 금융위 관계자는 “거래 금지가 아니라 보류”라며 “처리 방안을 추가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사이 입장이 누그러졌다. 14일 발표된 금융위의 추가 입장문에는 “(현물 ETF 승인은) 금융시장 안정성, 금융회사 건전성, 투자자 보호와 직결된 만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과 사흘 만에 ‘위법→보류→면밀히 검토’로 입장이 바뀌었다.섣불리 국내 거래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가상자산 발행·유통 등을 다룬 2단계 가상자산법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와야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여부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증권사가 거래를 중단한 비트코인 선물 ETF는 “규율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금융당국의 미흡한 대비가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한 지 2년이 넘었고 현물 ETF 승인도 시장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왔다”며 “당국이 미리 충분한 검토를 할 시간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정엽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은 “가상자산을 사기로 보던 금융당국의 시각이 그동안 진전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서형교/도병욱/조미현 기자 seogyo@hankyung.com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0일(현지시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하면서 투자자 보호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SEC는 이전에 암호화폐 시장이 사기 및 시장 조작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ETP 승인을 거부해왔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도 “많은 투자자가 암호화폐 시장에 접근하기 전에 더 많은 규제와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로 어쩔 수 없이 비트코인 ETP를 승인하게 됐지만 겐슬러 위원장의 부정적인 인식 자체가 바뀌진 않았다. 그는 이날 “SEC가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보증하지 않았다”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및 가치가 암호화폐에 연동된 상품과 관련된 무수한 위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적인 이유로 비트코인 ETP를 승인하긴 했지만 비트코인 투자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는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SEC 승인 과정도 험난했다. 5명의 위원 중 캐럴라인 크렌쇼 위원과 제이미 리자라가 위원은 비트코인 ETP 승인에 반대표를 던졌다. 크렌쇼 위원은 “(이번 결정은) 불건전하고 비역사적”이라며 “투자자 보호를 더욱 희생시킬 수 있는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승인 전날 SEC의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이 해킹돼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 승인’이라는 가짜뉴스가 게재된 사건도 투자자 보호 이슈에 불을 붙였다. 이와 관련, 공화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겐슬러 위원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이번 오보 사태에 대해 브리핑을 요구했다.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비트코인이 미국 증시에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로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된다. 2009년 1월 세상에 나온 지 15년 만에 제도권 금융에 편입하게 됐다.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위원회는 다수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ETP는 ETF, 상장지수증권(ETN) 등과 같이 각종 지수나 자산을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다. 비트코인은 미래 가격을 반영하는 선물 ETF로는 이미 시장에 6개 상품이 나와 있다. 이날 SEC 승인을 받은 현물 ETP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발키리, 프랭클린, 그레이스케일 등에서 만든 11개 ETF 상품이다. 11일부터 거래가 가능하다.이번 승인으로 기관투자가는 각종 규제나 내부 회계 규정에 걸리지 않고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도 별도로 전자지갑을 개설해 돈을 옮길 필요 없이 일반적인 ETF와 같은 방식으로 거래할 길이 열렸다.하지만 국내 투자자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할 수 없을 전망이다. 증권사들이 해당 ETF 거래를 중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 거래일 대비 2.59% 오른 6362만1000원에 거래됐다. 이날 한때 6500만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6500만원대에 거래된 것은 2021년 12월 이후 2년여 만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면 2025년까지 비트코인 개당 가격이 20만달러(약 2억6000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올해 비트코인 ETF에 500억~1000억달러가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뉴욕=박신영 특파원/서형교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