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올해 부동산시장은 시작과 끝 모두 '둔촌주공 구하기'였습니다.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분양을 전후로 부양책이 나오는가 하면, 실거주 의무 폐지를 위해 국회에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지원사격까지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부가 구해줘야 할 아파트가 하나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제2의 둔촌주공 사태 임박했다고? [집코노미 타임즈]
구조신호는 서울 대조1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감지됐습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1년치 공사비 1800억원을 받지 못했다면서 조합이 연내에 돈을 내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이죠.

문제는 조합에서 돈을 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일반분양을 해야 시공사에 낼 돈을 마련할 수 있는데 내홍이 격화돼 일정을 잡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직무정지 중인 조합장 자리도 사실상 공석인 상태입니다. 전체 규모만 2400가구가 넘는 대형 정비사업지가 착공 1년 동안 분양도 하지 못하고 속사정입니다.

재개발·재건축조합이 공사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우리가 아파트 분양대금을 내는 절차와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돈이 전부 준비돼 있었던 게 아니라 단계별로 마련하는 것이죠. 일단 분양 1개월 전후로 수분양자들의 계약금을 받아서 시공사에 내고, 이후로는 때마다 중도금을 나눠받아 납부하는 형태입니다. 부동산시장에서 선분양이 대표적인 분양 형태로 자리잡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자금이 경색되지 않는다면 가장 효율적인 구조니까요. 그런데 대조1구역은 이 자금흐름이 첫발부터 꼬여버린 것입니다.

둔촌주공조합도 분양을 앞두고 공사비 분쟁 때문에 비슷한 일을 겪었었죠. 그래서 건설사들이 대형 현수막을 걸고 유치권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유치권이란 '내가 여기 공사를 하다가 떼인 돈이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대형 아파트 건설사업에 유치권이 행사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죠. 극적으로 봉합되긴 했지만 결국 둔촌주공은 공사를 6개월 동안 중단해야 했고 입주도 2년가량 미뤄졌습니다.
제2의 둔촌주공 사태 임박했다고? [집코노미 타임즈]
대조1구역도 둔촌주공처럼 중도 분양이나 후분양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조합 입장에선 당장 돈을 내긴 어려우니 후불로 비용을 치르는 것이죠. 그런데 시공사 입장에선 후분양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사 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금융비용을 모두 부담한 뒤 나중에 보전받으려면 최종적인 분양가 수준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아파트를 짓는 지역에서 그 분양가 수준이 소화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높은 분양가를 책정했다가 미분양이 발생하면 그만큼 건설사의 손해로 돌아오는 구조가 바로 후분양의 단점인 것이죠. 부동산시장이 꺾이는 분위기에선 더더욱 이 같은 위험을 부담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후분양은 주로 강남이나 서울 도심 등 시장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 정비사업지에서 채택되는 편입니다. 시공사의 공사중단 통보는 조합에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최후통첩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그런데 대조1구역이 당장 분양에 나서더라도 분양가 수준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중도에 공사비를 증액한 데다 사업지연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재개발사업의 거의 마지막 단계라고 하는 관리처분계획인가부터 착공까지만 3년이나 걸리기도 했죠.

이렇게 늘어진 시간은 결국 모두 돈으로 계산됩니다. 전용면적 59㎡의 조합원 평균분양가는 5억원대인데요. 여기에 입주권 프리미엄과 사업 지연 등에 대한 추가분담금을 더하면 조합원들의 실질적인 부담 금액은 9억~1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업의 주체인 조합원들이 이 정도니 일반분양가는 이보다 높아질 수 있는 것이죠.

서울 서북쪽 끝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소형면적대 가격이 10억원을 웃돈다면 청약시장에선 어떻게 반응할까요. 부정적인 결과로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사업이 표류한다면 또 부동산시장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내년엔 '대조1구역 구하기'를 보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조희재·예수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