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서 집을 사려고 준비 중인 장모씨(35)는 최근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자주 전화를 받는다. 집주인이 "가격 조정을 해 줄테니, 일단 집을 보러 오라"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몇 달 전 집을 보러 갔을 때만 해도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집주인이 바뀌었다"며 "가격을 더 내릴 것 같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집을 매도하려는 집주인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외곽은 물론 주요 핵심지 집값이 고점을 찍은 후 점차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집주인이 우위였지만, 거래 침체와 매물 증가가 지속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일부 마음이 급한 집주인들은 호가를 내리는 등 최대한 실수요자들을 맞춰주는 분위기다. 서울 핵심지라고 불리는 강남을 비롯해 강동, 마포까지 하락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타워팰리스' 전용 164㎡는 지난 2일 43억3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지난달엔 49억5000만원에 팔렸는데 이보다 6억원 이상 내린 금액이다. 지난 10월 49억7000만원까지 오르면서 신고가를 기록했던 이 면적대는 올해 신저가인 43억원(7월) 수준까지 다시 내려왔다.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엘스'도 매매가가 주춤한 모습이다. 지난달 전용 84㎡은 22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8월 25억원을 기록했던 이 면적대는 9월과 10월까지 24억원대 거래가 이어졌지만 지난달 들어서는 22억원대 거래만 맺어졌다. 이달 들어선 신고된 건이 아직 없다.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도 지난달 16억2250만원에 거래돼 9월 기록한 신고가(16억8000만원)보다 5000만원 넘게 내렸다. 전용 59㎡도 지난 2일 11억5000만원에 계약이 맺어져 지난 9월 기록한 13억2500만원보다 2억원 가까이 내렸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2단지' 전용 59㎡는 지난 10월 13억원에 손바뀜했는데 지난 8월 거래된 13억7500만원보다 7500만원 하락했다. 이후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까지 신고된 계약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 지역. 사진=뉴스1
서울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 지역. 사진=뉴스1
집값이 고점을 기록하고 하향 조정되면서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시장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그간 집주인이 쥐고 있던 협상의 '키'가 매수인에게 넘어가서다.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대표는 "올해 상반기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뒤 추석 이후부터는 시장이 잠잠해졌다"며 "최근엔 문의는 있지만 계약 체결은 거의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집주인들은 거래가 활발했던 '6~7월 집을 정리했어야 했다'는 얘기를 한다"며 "요즘 집을 보러 오는 수요자들은 '가격을 더 내린다는 얘기는 없느냐', '집주인과 집값을 협상할 수 있느냐' 등의 얘기만 한다"고 전했다.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도 "집주인들이 올해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던 시기보다 호가를 1억~2억원가량 낮추고 있지만 선뜻 계약하려는 실수요자들은 없다"며 "내년에 집값이 더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정말 낮은 가격의 급매물이 아닌 이상은 관심이 없다"고 귀띔했다.

버티고 있는 집주인들도 있다.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실수요자들이 진입하려는 수요가 있는 곳이다 보니 집주인들이 당장 가격을 크게 낮춰 매물을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매수자들이 원하는 가격의 급매는 아직 많지는 않다"고 전했다.
서울 시내 부동산의 전세 안내문. 사진=뉴스1
서울 시내 부동산의 전세 안내문. 사진=뉴스1
매수인 우위 시장은 향후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올해는 특례보금자리론, 시중은행 50년 만기 대출 등 다양한 정책 대출 상품이 있었지만, 내년엔 이보다 적용 범위가 좁은 신생아 특례대출 밖엔 없지 않으냐"며 "하락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아무래도 집을 파는 집주인보다는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들이 우위에서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국 집값은 하락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1일) 기준 서울 집값은 0.03% 내렸다. 전주(-0.01%)에 이어 2주 연속 하락세다. 영등포구(0.02%), 성동구(0.03%)를 제외한 23개 구 집값이 내렸다.

매매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이달 둘째 주 기준 83.8을 기록했다. 지난 6월 첫째 주(5일, 83.9)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강북권역은 82.1, 강남권역은 85.5로 강북권역이 대체로 매매 심리가 악화했다.

거래도 적은 수준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 1412건을 기록한 매매 건수는 2월 2454건으로 2000건대 들어서더니 4월 3191건으로 3000건대로 올라섰다. 이후 지난 8월 3866건으로 올해 최고점을 기록했다. 10월 2312건으로 다시 2000건대로 내려온 매매 건수는 지난달 기준으로 1713건을 기록 중이다. 이달 말까지 11월 거래가 등록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0건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