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찍은 필름사진 집대성…60년대 뉴욕·서울 흑백 풍경 대조적
노숙자·거리악사·노인 등 고독하고 소외된 존재에 시선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75)를 미국 뉴욕에서 만났을 때다.

목에 카메라를 걸친 그는 소호, 차이나타운, 브로드웨이 12번가 등 곳곳을 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대상은 공원과 길 위를 잠자리 삼은 홈리스부터 밥벌이하는 거리의 악사, 마블 영웅 복장을 한 청년, 임대료가 고공 행진하는 부동산 전단까지 가리지 않았다.

한 컷씩 담을 때마다 그는 '사진 설명'을 달듯 말했다.

"고독한 인생이 넘쳐", "화폐가 없으니 월세가 살인적이야", "크하하~ 삶은 고통이야, 지옥이야…".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2016년, 청년기를 보낸 뉴욕으로 다시 이주한 한대수가 40여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해 펴냈다.

사진집 제목은 입버릇처럼 말하던 '삶이라는 고통'.
그는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 '히피 문화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사진작가로도 오랜 시간 활동했다.

뉴욕의 사진학교를 다녔고 한국에서 자신의 곡이 금지되자 뉴욕 스튜디오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서울의 한 영자신문 사진 기자로 일한 적도 있다.

이미 사진집 두권을 냈고 사진전도 몇차례 열었다.

그의 삶에서 카메라는 "목의 십자가"였다.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한대수는 뉴욕에서 오랜 세월 수십 개 박스에 담아둔 미인화 네거티브·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했다.

인화한 수십만 장 가운데 흑백·컬러사진 100여 점을 고르고 챕터마다 에세이를 실었다.

그가 순간 포착한 '컷'은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뉴욕과 서울, 모스크바, 파리, 바르셀로나, 베이징, 탕헤르 등 세계 여러 도시를 넘나든다.

그는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그때 내가 쏟아부었던 피와 땀과 눈물이 느껴진다"고 했다.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흑백 사진인 1960년대 말 뉴욕과 서울의 대조적인 풍경은 향수 섞인 시대의 단면이다.

자본주의 천국이 된 뉴욕은 그 시절에도 낭만과 고독이 공존했다.

'문화 혁명' 성격을 띤 68혁명 시기의 자유분방한 공기·세련된 패션, 고층빌딩 숲 빈민의 무정한 현실이 교차한다.

산업화 이전의 서울 풍경에선 도시민과 아이들의 팍팍한 삶이 전해진다.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그러나 그에게 1960년대는 인생의 봄날이었다.

10대 후반의 방황을 끝내려 애쓰며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었다.

1969년 TV쇼 스튜디오 풍경, 젊은 날의 송창식과 펄시스터즈, 첫 아내의 모습, 그와 함께했던 공간이 그 흔적을 보여준다.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사진은 '찰나의 미학'으로 작가 특유의 감성이 깃들기 마련이다.

한대수는 슬픈 가족사로 일찍이 고독을 배웠다.

서울대 공대생이던 아버지는 미국 유학을 떠난 뒤 실종됐고 어머니도 재가해 조부모 손에 자랐다.

그는 17살에 한국말을 잊고 인쇄업자가 된 아버지와 미국에서 재회했지만 아버지의 가정은 외로운 공간이었다.

1집 '바람과 나'의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이란 가사는 이때 태어났다.

그는 "슬픔에 깊이 병들어 있었기에 '행복의 나라로' 가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오랜 시간 방황한 그가 세상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은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귀결된다.

웅크리고 연주하는 파리의 기타리스트, 삶에 짓눌린 노인들, 심지어 새장 속에 갇힌 새까지.
그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노숙자에 대해 "나는 매일 같이 늘어나는 이 슬픈 인간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파진다"며 "똑같은 한 인생, 똑같이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태어났을 텐데,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인생이 되어버렸다니…"라며 안타까워한다.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어느덧 '로큰롤 할배'가 된 히피는 세계 도처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해 평화를 기원한다.

평소 강조하는 말도 '피스&러브'(Peace&Love)이다.

그는 사진집 뒷부분에 1960년대 말과 2003년 뉴욕에서 '노 워'(No War)를 외치는 반전 운동 사진을 실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적인 전쟁은 진행형이다.

그는 딸 양호와 친구들에게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 깊이 우려한다.

"우리는 지구가 필요해도 지구는 우리가 필요 없다.

"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종교도 철학도 답을 주지 못하는, 예측불허의 삶을 그는 이렇게 갈음한다.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는 것"이라고.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그렇지만 "삶이란 진실로 아이러니"하다.

고통과 비극이 그를 음악가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작가로 만들었으니까.

북하우스. 312쪽.
"고통 없는 사람 어디 있나"…한대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