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가 의대 가라고 등 떠미나" 어느 공대 교수의 한숨
“정부가 의대에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 아닌가요.”

최근 만난 서울 소재 한 공과대학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한숨부터 쉬었다. 대책 없이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이공계 패싱’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우려였다. 지금도 국립·사립을 떠나 모든 공대가 우수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인데 앞으로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 대형 민간 병원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육성하기로 했다. 수가 인상과 병·의원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 연 1조원 이상의 관련 재정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계획에 일선 교육현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의대에 가려는 n수생 급증으로 학원가가 북적이고, 초·중등 ‘의대반’에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반면 이공계와 직결되는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은 5조2000억원(16.6%) 줄었다. 과학자를 R&D 예산을 나눠 먹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 세력으로 규정했다. 카르텔을 찾기 위한 전방위 조사까지 진행 중이다. A교수는 “일부의 비리로 전체 과학자를 부패하고 파렴치한 집단으로 만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공대를 가고 싶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공계 교수들도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지 않는다. 의사가 부족하고, 지방의 의료 공백이 심각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문제는 지금의 정책이 ‘정부가 과학자보다 의사를 우대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신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들은 한국 경제의 주역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반도체, 휴대폰 등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외화를 벌어왔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이도 과학자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첨단학과를 키우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투입 즉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답이 없어 보이는 연구가 미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지난달 만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무트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과학예산 삭감에 대해 “R&D 투자를 그렇게 줄이면 10년 후 한국은 무엇을 먹고살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R&D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장기 투자라는 얘기다. ‘의대 정원 확대’가 ‘공대 기피 현상’을 부추길까 걱정하는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