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대수로 3, 4단계 공사 수주를 협의하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오른쪽)와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 /한경DB
리비아 대수로 3, 4단계 공사 수주를 협의하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오른쪽)와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 /한경DB
1983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성공시켜 동아그룹을 재계 10위로 키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

그는 최문준 동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대전에서 태어나 미국 조지타운대를 졸업했다. 1966년 동아콘크리트 사장으로 경영을 시작해 1968년 동아그룹 주력 계열사인 동아건설과 대한통운 대표를 지냈다. 이후 대전문화방송과 동아생명을 거쳐 1978년 35세에 동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전 회장은 1983년 글로벌 대형 건설사를 제치고 33억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를 수주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 공사로 불리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1991년까지 성공적으로 공사를 끝냈다. 사하라를 농지로 바꾸는 기적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빅맨’ ‘불도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공사 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1989년 55억달러 2단계 공사, 1996년 100억달러 3·4단계 공사를 잇달아 따냈다. 통치자인 무아마르 카다피가 국가 원수 수준의 대우를 해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1993년에는 시가총액이 대우 삼성 현대 LG에 이은 재계 5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후 건설, 방송, 금융 등에서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동아건설이 시공한 성수대교가 1994년 무너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데다 아파트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주력 계열사인 동아건설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 최 전 회장은 1998년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동아그룹은 그해 경영정상화를 목표로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갔다. 2000년 동아건설이 부도를 낸 데 이어 주력 계열사인 대한통운이 계열 분리를 선언했다. 2001년 동아그룹은 법원에서 파산이 확정돼 최종 해체됐다.

최 전 회장은 동아그룹에 마지막으로 남은 학교법인인 공산학원의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동아방송예술대와 동아마이스터고 등이 이 학원에 속한다. 그는 1981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와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공로로 받은 국민훈장 모란장(1988년)을 비롯해 요르단왕국 독립훈장,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우진 최용혁 최재혁 씨, 딸 최선희 최유정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8일 오전 7시.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