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금이 내년 폭염 대비할 때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지 않는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이다.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한여름 폭염이 언제 있었나 싶다. 그러다가 사과, 대추 등 상당수 신선식품 가격이 가을 제철에도 여전히 고공행진하는 실상을 확인하면, ‘과연 여름이 가긴 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여름 생육기에 닥친 무더위로 시장에 내놓을 만한 A급 품목이 자취를 감춘 바람에 가격이 진정되지 않는 품목이 상당수여서 하는 말이다.

대형마트 등에서 지난달 한때 개당 1만원에 거래돼 ‘금(金)사과’ 소리가 나온 사과가 그렇다. 최대 성수기인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가격이 다소 진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도 1년 전보다 20% 이상 비싼 값에 판매된다.

진정되지 않는 신선식품 물가

여기에 직격탄을 날린 게 지난여름 번갈아 가면서 나타난 폭염과 폭우, 곧바로 이어진 탄저병 창궐이다. 이 여파로 대형마트 바이어들 사이에서 “상(上)품 매물의 씨가 말랐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올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3.1% 급감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과뿐 아니라 대추·엽채류를 비롯해 심지어 수산물에 이르기까지 이상고온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신선식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려되는 건 정부가 폭염이 야기한 신선식품 인플레이션을 비축물량 방출과 같은 관행적 대증요법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 안정에 전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하자 관계 부처가 처음 들고나온 카드는 배추 2200t, 천일염 1000t 공급이었다. 김장철을 앞두고 재료값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자 내놓은 해법이었다.

정부가 비축 물량을 풀어 공급을 늘리면 해당 품목 가격은 영향을 받는다. 배추, 소금은 단기적으로 가격이 안정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년은, 또 후년은 어쩔 건가.

대증요법으론 고물가 해결 못해

‘폭염 사회’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갈수록 심해지는 더위는 만성화 조짐을 보인다. 최소한 올해의 엘니뇨가 내년엔 슈퍼 엘니뇨로 커져 또다시 역대급 무더위가 올 것이라는 데 기후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는 올해보다 더한 신선식품 가격 폭등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이상고온발(發) 인플레를 저지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생산→유통→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메스를 들이대 왜곡된 구조를 정상화해야 그나마 지속 가능한 가격 안정을 꿈꿔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 더웠냐는 듯 선선한 요즘은 그나마 내년의 이상기후를 대비할 ‘골든타임’이다. 생육에 어려움을 겪는 작물이 많지 않아 폭염 대비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문해서 그런지 정부 대응은 감지되지 않는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절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일상화할 여름철 새벽·야간농사에 대한 매뉴얼은 있나. 시설 재배 확대를 가로막는 농지법을 뜯어고칠 의사는 없는가. 스마트팜 건설을 두고 반복되는 지역주민과 농업벤처 간 충돌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물가를 기필코 잡겠다는 정부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적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고 즉각 행동해야 한다.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두더지 앞에서 임기응변으로 내려치기 급급하면 물가 전쟁에서의 승리는 ‘미션 임파서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