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 소설화…존재론적 불안 다뤄
노벨문학상 욘 포세 장편 '멜랑콜리아' 국내 출간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장편소설 '멜랑콜리아'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19세기 말 실존 인물인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의 생애 중 이틀을 다룬 이 작품은 실제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을 버무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한 독특한 매력의 소설이다.

1부('멜랑콜리아 Ⅰ')는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1853년 어느 가을날, 라스는 위대한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 같은 노르웨이 출신 화가 한스 구데가 교수로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를 찾는다.

보랏빛 코듀로이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자신의 운명을 정해줄 구데 선생을 기다리던 그는 돌연 착란에 사로잡힌다.

"나는 한스 구데를 만나기 싫다.

나는 한스 구데가 내 그림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을 듣기 싫다.

나는 오직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을 뿐이다.

나는 오늘, 한스 구데를 만날 기력이 없다…"
갑자기 자신감을 잃고 불안과 우울, 편집증적 망상에 마구 빠져들던 그의 눈앞에는 또 다른 운명의 빛이 비춘다.

바로 자신이 하숙하는 빙켈만 집안의 딸, 헬레네다.

2부인 '멜랑콜리아 Ⅱ'는 1부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1902년 노르웨이 서남단 스타방에르가 배경이다.

소설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이자 치매를 앓는 인물 올리네의 관점으로 옮겨지고, 올리네는 점점 흐릿해지는 기억 속을 더듬으며 혈육 라스의 모습과 음성 등 모든 흔적을 헛되이 뒤쫓는다.

올리네는 과연 그토록 애타게 쫓던 라스를 되찾을 수 있을까.

'멜랑콜리아'는 포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난 주제 의식, 서술 기법, 예술적 비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소설로 꼽힌다.

소설의 두 화자 중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실존 인물이었지만 2부의 올리네는 순전히 소설을 위해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라스 헤르테르비그와 치매로 기억을 잃으며 한없이 연약한 육체로 겨우 살아가는 누이 올리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소외된 인간들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작가는 그 목소리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본원적인 불안과 생명의 빛에 대한 희구를 드러낸다.

노벨문학상 욘 포세 장편 '멜랑콜리아' 국내 출간
욘 포세가 구사한 문장은 매우 단순하고 간결해 한편으론 음악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복적인 문장이 계속 이어지면서 밑에 가라앉아 있던 정보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독자들은 인물들의 사연과 내면에 점차 익숙해지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을 원어인 뉘노르스크(Nynorsk)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손화수 번역가는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작품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그 특유의 아름다운 리듬감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터"라고 적었다.

민음사는 포세가 각각 1995년과 1996년 노르웨이에서 발표한 '멜랑콜리아 Ⅰ'과 '멜랑콜리아 Ⅱ '를 합친 합본호를 이번에 세계문학전집의 431번째 책으로 출간했다.

민음사. 손화수 옮김. 54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