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 높은 ‘위너(winner)’ 후보물질에 연구개발(R&D) 역량을 집중해 신약 개발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회장이 꼽은 회사 성장 비결이다. 2017년 회장 취임 직후 사업전략을 재정비한 게 당뇨·비만 치료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는 ‘마운자로’ 개발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당뇨약으로 개발된 마운자로는 비만 치료약으로도 적응증을 확대해 수년 내 세계 매출 1위 의약품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릭스 회장은 “10년 뒤에도 릴리는 지금 개발 중인 혁신 신약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과감한 사업 조정으로 신약 ‘올인’릭스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1996년부터 25년 이상 줄곧 릴리에 몸담은 ‘릴리맨’이다. 마케팅, 영업, 신약개발 파트를 두루 거쳤다. 릭스 회장은 “회장이 되고 세 가지 R&D 전략에 집중했다”고 했다. R&D 기간 단축, 의약품 허가기간 단축, 위너 후보물질에 R&D 집중 등이 그것이다. 그는 “2016년만 해도 임상시험 첫 환자 투약에서 약물 판매허가까지 10년가량 걸렸지만 지난해에는 이를 5년으로 줄였다”고 했다.선택과 집중 전략도 통했다. 릭스 회장은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약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동물의약품 부문을 2018년 분사하고 특허 만료된 의약품 판권을 매각했다”며 “이런 크나큰 도전을 감수한 결과 현재 릴리는 창사 이래 가장 풍부한 중·후기 개발 단계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릴리가 임상 1상과 2상, 3상을 진행 중인 후보물질은 각각 24개, 21개, 21개다. 매년 여러 개의 신약을 선보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마운자로, 비만약 허가 땐 연 매출 33조릴리는 당뇨·비만 치료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현재 당뇨약으로 허가받은 마운자로는 지난해 6월 출시 후 7개월 만에 5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투자은행 UBS는 비만약으로도 허가받으면 마운자로의 연 매출이 3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판매 1위 의약품인 애브비의 휴미라(28조원)를 뛰어넘는 수치다.릭스 회장은 “미국에선 지난 20년 동안 과체중 등으로 성인 당뇨병 환자가 두 배 늘어났다”며 “당뇨병에 대한 광범위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양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개발 중인 비만약의 약물 유효성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를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릴리가 마운자로의 치료 질환을 심혈관질환, 수면무호흡증 등으로 확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릴리는 먹는 비만약도 개발 중이다. 릭스 회장은 “임상시험 피험자를 모집 중인데 이르면 2025년 임상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당뇨보다 비만의 임상시험 결과가 빨리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릴리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개발과 함께 약 복용 중단 시 감량 체중을 유지하고 체중 감소 시 근육손실을 최소화하는 연구(임상 1상)도 하고 있다. 가동 중인 비만 프로젝트는 4~5개에 이른다.○“치매 예방 R&D도 진행 중”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신경질환도 릴리가 공략하고 있는 시장 중 하나다. 릭스 회장은 “치매가 야기하는 경제적 부담은 연간 1조3000억달러(약 1770조원)지만 아직까지 의미있게 질병 진행 경과를 바꾼 치료제는 없다”며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제 시장은 앞으로 큰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고 평가했다. 이어 “치매는 여러 다양한 증상의 집합체”라며 “퇴행성 신경질환은 증상이 나타난 뒤 치료를 시작하는 것보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미리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만큼 릴리도 예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한국 기업과의 협업 의사도 내비쳤다. 릭스 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R&D는 자체 연구가 3분의 2, 외부 협력이 3분의 1 수준”이라며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질환 영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효과적인 접근법이 있다면 협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남정민 기자 ▷인터뷰 전문은 한경 바이오인사이트(hankyung.com/bioinsight)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만’이라는 메가트렌드를 타고 세계 제약·헬스케어 시가총액 1위 타이틀을 거머쥔 일라이릴리가 ‘먹는’ 비만약에 승부수를 던졌다. 배나 허벅지에 주사를 놓는 기존 비만·당뇨 치료제를 알약으로 개발해 시장 판도를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데이브 릭스 릴리 회장(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2025년 경구용 비만 치료제 연구결과를 내놓아 1위 모멘텀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릭스 회장은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시장 점검을 위해 5년 만에 방한했다.릴리는 제약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다. 세계 비만약 시장의 최강자인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를 뛰어넘을 것으로 평가받는 신약 마운자로의 허가를 앞두면서 지난 6월 세계 제약사 가운데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현재 릴리 시총은 5045억달러(약 681조8400억원)에 이른다.비만약 시장 전망은 밝다. 세계 비만 인구가 2035년 19억 명에 이르고 당뇨병, 뇌졸중, 심장마비, 골관절염 등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심축이 항암제에서 비만약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릭스 회장은 “비만이나 당뇨병은 평생 환자를 괴롭히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라며 “릴리의 제1 목표는 사람들이 더 오래 그리고 활기차게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147년 역사를 자랑하는 ‘당뇨 명가’ 릴리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뿐 아니라 약물 복용을 중단하더라도 감량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치료제를 연구개발(R&D)하고 있다.릭스 회장은 한국 제약·바이오 시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선진국이 된 부유한 나라면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제약·헬스케어 영역에서 굉장히 매력 있고 잠재력 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이어 “릴리는 매년 매출의 25%가량을 R&D에 투자하는 만큼 더 나은 후보물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며 “다양하고 유연한 정책을 통해 한국에서도 혁신 신약이 빠르게 허가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이제는 다음 단계로 올라설 때입니다(It’s time to move up).”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회장이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 규제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릭스 회장은 혁신적인 신약이 한국 환자들에게 빠르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글로벌 수준에 발맞춰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허가 및 급여 측면에서 규제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릭스 회장은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규제 때문에 글로벌 신약 도입이 늦춰지거나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어렵게 의약품이 허가돼도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 구조상 보험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받는다 하더라도 매우 지연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약업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약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다양하고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혁신 신약이 다른 국가와 동시에 허가되고, 공정한 가격으로 빠르게 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신약이 처음 출시된 뒤 한국에서 급여가 적용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46개월(약 4년)이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출시된 460개 신약 중 최초 출시 후 1년 내 도입된 신약은 5%에 불과했다. 또 한국의 건강보험 급여 신약 비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20위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영국(48%)의 절반 수준이다.릭스 회장은 신약 허가를 늦추는 원인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볼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한국 규제당국에 신약 허가 시 제출해야 하는 임상 연구에 한국 환자 비율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조금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이어 “중대한 질환의 경우 거의 모든 인류가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을 (한국 규제당국이) 고려했으면 한다”고 했다.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