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아픈 10대의 나를 말하다…신간 '초록색 범벅 인간'
스스로를 '비비안'이라고 칭한 서울에 사는 한 소녀는 마주하는 일상이 낯섦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고 느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았다.

우량아로 태어나 이후 과체중·비만이 된 그는 초등학교 시절 급우들로부터 '돼지'라고 놀림당했다.

이런 경험은 트라우마와 같았다.

옷 가게에 들어서면 직원들은 '손님에게 맞는 옷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거나 눈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10대 후반이 된 비비안에게 학교는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독서실에서는 숨이 턱턱 막혔다.

수시로 찾아오는 구토증에 화장실로 향해야 했다.

어느 날 학원에서 4시간 동안 이어질 수업을 앞두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간 비비안은 쏟아지는 인파에 압도돼 사람이 적은 제과점에서 산 빵을 인적이 드문 놀이터에서 힘들게 삼켰을 뿐이다.

힘들고 아픈 10대의 나를 말하다…신간 '초록색 범벅 인간'
입시가 주는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비비안은 고3이 되자 평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기를 쓰고 버티기로 다짐하지만, 무거운 마음과 솟구치는 감정들을 감당하는 것은 벅차기만 했다.

밤도 낮도 두려운 비비안은 새벽에 쪽잠을 자거나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악몽에 시달리며 숙면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신간 에세이 '초록색 범벅 인간'(김하은 지음)에는 조울 증세 등을 겪으며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지은이의 자전적 스토리가 감수성 풍부한 언어로 소개돼 있다.

평범한 일과에도 적응하기 힘든 상황에서 느끼는 좌절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무기력함 등을 세세하게 고백한다.

어머니를 따라 정신과에 간 비비안은 의사의 진료를 받고 여러 가지 약을 먹는 등 돌파구를 모색한다.

하지만 의사는 비비안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병명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처방받은 약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추정하는 것도 어느덧 지겨운 일이 됐다.

학교 기숙사는 비비안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그런 비비안을 품어주기보다는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우니 나가라'고 통보한다.

보건 교사가 도와주겠다며 비비안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먼지까지 탈탈 털어내듯 파악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10대 후반의 비비안은 도움을 갈구한다.

우선 위로가 담긴 어른의 조언이 필요했다.

한 달에 한 번 한번 만나는 의사에게 "나를 좀 봐달라"고 외쳐야 했고 내밀한 이야기를 일기에 적으며 힘든 시기를 버티기도 한다.

힘들고 아픈 10대의 나를 말하다…신간 '초록색 범벅 인간'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것이 습관이 되다시피 했지만 "간절하게 친구의 도움을 받고 싶었던" 시기도 꽤 있었다.

그가 원한 것은 전화를 받아주는 일, 해맑은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반응해주는 일 정도였다.

어려운 시절 그에게 힘과 용기를 준 것은 친구들이었다.

고교 예비 소집 때부터 친해진 '반가워'와 '토마토'는 비비안에게 위로와 연대감을 선사하는 친구가 된다.

집까지 찾아와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주는 친구 덕에 음울했던 방안에는 웃음이 가득해지기도 한다.

어른이 되는 길목에 선 비비안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기로 결심한다.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메모를 고치고 싶은 충동을 되도록 억제한다.

그는 청소년의 목소리로 방황기의 아픔과 격정을 고백하고서 골방을 나와 새로 출발할 것을 다짐한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10대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어른에게는 청소년의 아픔에 공감할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다.

현암사. 208쪽.


/연합뉴스